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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4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67 - 291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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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새롭게 등장한 ‘永平’명백자의 소개를 통해 기존에 언급되지 않았던 조선 전기 백자 제작지와 그 지방관의 관계 및 지명이 백자에 표시되는 원인에 대한 접근이다. ‘永平’명백자의 제작지는 경기도 永平縣이다. 15세기 전반의 영평현은 조선의 여러 국왕의 강무장으로서 왕실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었다. 조선 전기 국왕은 강무나 사냥으로 지방에 머무를 때 沙器所를 유숙지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 영평현은 왕실의 사냥터로 인식될 정도의 넓은 숲과 산들이 자리했으므로 瓷器를 굽기 위한 땔감을 확보하기 용이했다. 당시 영평현은 주변에 백토를 구할 수 있었고 用水의 확보도 용이했다. 영평현의 백자제작과 관련된 배경을 살피는 과정에서 조선 초기 주요백자 생산지의 지방관을 두루 역임한 閔恭이라는 인물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다. 민공은 영평현감을 거쳐 남원부사와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며 그가 남원부사와 경상도관찰사를 거치는 기간은 두 부임지의 백자 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기간과 일치한다. 이와 함께 민공과 인척관계에 있던 다른 여흥민씨들이 지방관으로 머물렀던 경기도 광주와 강원도 양구 역시 조선 초기 백자를 생산했다. 이 논문이 주목하는 경기도 영평현을 시작으로 경기도 광주, 강원도 양구, 전라도 남원, 경상도 고령과 상주 등의 백자 생산은 여흥민씨 지방관들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여흥민씨 지방관들은 太宗 이후 외척의 숙청으로 위축된 가문의 입지를 회복하고자 조선 왕실이 선호했던 백자의 생산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또한 ‘永平’명백자와 같이 地名만이 표시된 백자는 선행연구에서 접근된 바와 같이 해당 군현에서 소속된 道를 거치지 않고 도성으로 직접 瓷器를 납입할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명이 그릇에 표시되는 배경에 대한 유추는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생산된 지명이 표시된 분청자와의 연관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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