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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성화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13집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153 - 200 (48page)
DOI
10.52271/PKHS.2019.12.11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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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초 절강성 앞바다 쌍서항에서의 밀무역은 휘주 출신들의 허씨 형제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이 허씨 형제들은 둔문해전에서 패배한 뒤에 말래카로 물러가 있는 상태였던 포르투갈인들을 쌍서항까지 유인하였다. 포르투갈인들이 가져온 후추 등의 동남아시아산 향료를 중국 내지에 판매하여 이윤을 확대하려는 의도였다. 중국 내지에서는 이러한 동남아시아산 향료를 구입하여도 대금으로 사용할 은(銀)이 부족한 상태였고, 이 딜레마를 해결한 것이 마침 일본의 이와미 은광에서 양산되던 은(銀)이었다. 그 결과 쌍서항에서는 일본은과 중국산 견직물을 교환하는 무역이 이루어졌고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이러한 거래 네트워크를 조직한 사람이 왕직이었고, 1548년 쌍서항 붕괴 이후, 그는 해상세력의 패자로 등장하게 된다.
1553년 ‘가정대왜구(嘉靖大倭寇)’ 현상의 배후에는 각지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중국 해상세력과 일본 해상세력이 모두 쌍서항으로의 집합이라는 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중일 교역을 중심으로 막대한 이권이 형성되자 ① 許二를 중심으로 한 휘주 출신 중국 해상세력, ② 포르투갈 세력, ③ 일본 해상세력(하카타 상인 + 왜구)이라는 3자가 연합하게 되었고, 점차 하나의 단일 대오로 조직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원리는 어디까지나 상업적 이익이 최우선이었고, 각각의 이해타산이 일치하지 않으면 분화하는 과정을 밟았다. 일례로 1553년 왕직이 이끄는 세력과 포르투갈 세력이 분화가 시작되었다. 왕직이 이끄는 세력은 중국 연해를 대대적으로 약탈하여 ‘가정대왜구’를 일으켰으나, 포르투갈 세력은 명조에 협조하여 1550년대 중반 마카오에 안착하게 되었다. 왕직의 몰락 이후, 포르투갈 세력이 중일교역을 독점하게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일본일감』과 ‘가정대왜구’
Ⅱ. 『일본일감』 속의 포르투갈 세력
Ⅲ. 『일본일감』 속의 중일교역과 왜구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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