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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욱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효원사학회 역사와 세계 역사와 세계 제56집
발행연도
2019.12
수록면
127 - 176 (50page)
DOI
10.17857/hw.2019.12.5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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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제까지 연구가 부재했던 만주사변에서 1949년 토지개혁 시기에 걸친 시기 만주지역의 만주족의 정치적, 경제적 삶의 변화를 훈춘의 사례를 통해 다루고 있다.
청나라가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주사변 전까지 만주족은 琿春사회의 향촌 엘리트 계층을 독점하다시피하고 과거 旗地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의 몰락은 일제의 만주침략과 더불어 찾아왔다. 일제가 중국인을 견제하기 위해 朝鮮族을 琿春에서 二等公民으로 간주하고 통치의 조력자로 이용하게 됨에 따라 만주족은 이전까지 독점했던 農會 등 각종사회단체, 교육계, 행정기구에서 차지하고 있던 독점적 지위를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琿春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의 商租權, 토지소유권이 합법화되고 東拓 등 금용기관이 이들의 토지수매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특히 40년대에 대규모 군부대와 다수의 일본인개척단이 琿春지역에 이주하게 되자 만주족들 중에도 토지를 수용당하고 타향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해방 후 토지개혁을 거치면서 만주족 중에 일제, 국민당과 협조하면서 지주로서 지위를 유지해오던 사람들마저 완전히 경제적 기득권을 박탈당하고 말았다. 중공정권 하에서 훈춘의 당, 정계에서 만주족 간부의 숫자도 조선족, 한족에 비해 왜소했다. 중공 치하에서 훈춘의 만주족은 본격적으로 소수민족화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한편, 해방 직후 길림성 동부에서 근거지를 확보해 국민당과 대적하려고 했던 중공은 琿春지역의 빈고 농민의 다수를 점하고 있던 조선족을 자신들의 주요 지지세력으로 확보해야만 했다. 조선족은 공산당의 비호 하에 토지개혁을 거치며 이 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장악했다. 또한 공산당의 빈고농 출신 자제들에 대한 교육혜택을 확대하려는 정책을 통해 훈춘의 교원, 중소학생의 대다수를 점하게 된다. 이로써 중공치하에서 조선족이 만주족을 대신해 훈춘 사회의 주도적인 민족으로 부상하게 된다.

목차

국문초록
서론
Ⅰ. 만주국 하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쇠퇴
Ⅱ. 해방과 지배민족의 교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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