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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보경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39號
발행연도
2020.2
수록면
105 - 129 (25page)
DOI
10.14769/jkaahe.2020.02.39.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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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후기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철불을 제작하기 시작하였고, 고려 전기에는 철불을 다수 조성하였다. 원주지역에는 고려 전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 철불 5구가 발견되었는데, 본 논문은 이 원주지역의 철불을 통해 고려시대 철불의 조성과 양식, 그리고 쇠퇴의 흐름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우선 원주지역의 철불의 과학적인 조사를 통한 철불 제작기법을 알아보고, 이를 토대로 과학적인 분석이 진행되지 않은 상의 제작기법을 분석하였다. 3구의 항마촉지인 상은 비슷한 기법으로 제작되었으며, 약사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은 분할주조선이 없이 제작되었다. 양식을 통해 항마촉지인의 철조여래좌상은 10세기 중반, 약사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은 11세기에 조성되었음을 추정하였다. 한편 제작기법과 편년을 통해 제작방법이 분할주조에서 분할주조선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철불을 연구하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원주지역에서 철불이 조성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원주의 제철유적은 현재까지 하나의 단야유적만 발견되었다. 그러나 고려시대 가장 활발한 제철장소인 충주의 제철유적은 제철의 전 과정에 해당하는 유적이 나오므로, 충주의 철을 원료로 고려시대 원주지역의 제철산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수운의 발달로 11세기의 원주지역이 부상하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철불을 조성했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철불 연구는 기원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감소와 쇠퇴에 대해서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그 이유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소(所)에 대한 과도한 공납은 장인들의 유리현상을 낳게 되었으며, 무십집권기에 대토지소유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화되었다. 또한 원의 과중한 철 공납 요구와 권세가들의 철 및 농기구 수탈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점차 피폐해졌다. 다른 금속에 비하여 철은 백성의 삶과 생산활동과 밀접하므로, 철 부족은 국가적으로도 큰 문제였으며, 철로 불상을 조성하는 것은 점차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철불 제작은 감소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목재가 불상 재료로 점차 대체되었을 것이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고려 전기 원주지역 철불의 현상과 제작기법
Ⅲ. 고려 전기 원주지역 철불의 양식과 제작시기
Ⅳ. 원주 철불 이후: 철불의 감소와 쇠퇴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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