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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54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77 - 216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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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은기의 제작과 사용은 국가의 엄격한 통제 하에 있어 신분에 따라 은의 사용을 제한하고, 왕실의례나 행사일지라도 은기의 제작과 사용 여부에 대해서 다른 기명과 달리 왕에게 고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현전하는 왕실하사 은기가 매우 드물고, 실물자료가 있어도 언제, 누가, 어떤 용도로 하사되었는지 이력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의 문헌자료와 일제강점기 신문기사를 면밀히 고찰하는 것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왕실하사 은기의 면모를 분석하는데 유효하다. 조선 왕실에서 하사되는 은기는 중국 및 일본 국왕이나 사신에게 하사된 몇 예를 제외하고는 관부(官府), 공신과 봉조하(奉朝賀) 등 신하들에게 하사되었다. 하사된 은기는 주로 은배와 은병인데 관부는 은배가 대부분이고, 신하에게는 은배와 은병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은배를 하사받은 관부는 승정원, 성균관, 기로소, 독서당, 홍문관, 충훈부, 예문관, 세자시강원 등 폭넓게 나타난다. 하사된 은배는 과음을 경계하거나 좋은 시험성적에 대한 시상, 왕의 뜻을 담은 훈계를 위해 사용되었다. 반면 신하들에게는 반정이나 전쟁 중의 화의 등 특수공적을 쌓거나 각종 시험의 장원, 선온에서 화답에 이르기까지 은배와 함께 은병, 은시저 등이 하사되었다. 근대의 전환기였던 고종대에는 러시아공사 베베르(Karl Ivanovich Weber,1841–1910), 손탁(Antoinette Sontag)여사, 영국공사 조던(J. N. Jordan,1852-1925) 부인 등 서양인과 왕실의 특수업무를 위해 조선에 온 외국인에게도 은배가 하사되었다. 순종대가 되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왕실의 은배 하사가 화병 하사로 바뀐다. 󰡔순종실록부록󰡕과 당시 신문기사에 의하면 순종대 왕실하사품은 은제화병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 배경은 순종대 강해진 일본의 내정간섭과 한일강제병합으로 인해 일본 왕실의 관례가 조선 왕실에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메이지기 후반 일본은 서양 왕실과 친밀한 교류를 위해 은제화병을 공식적인 외교증답품으로 사용하고, 대중에게 널리 유행하던 일반적인 화병과의 차별화를 위해 국화문을 강조하는 구나이쇼양식을 만들었다. 일본 왕실에 속한 화족으로 전락한 순종대 조선은 일본의 전례에 따라 왕실하사품을 화병으로 대체했다. 순종대에는 화병이 왕실하사품으로 전면에 등장하고, 성격과 기능도 기념품으로 변화하여 전통적인 왕실하사품과 차별화되었다. 그러므로 일제강점기로 들어선 순종대는 일본 왕실의 영향으로 왕실하사 은기의 종류, 성격, 기능이 바뀌는 식민지적 전환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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