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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申釵容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58號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135 - 156 (22page)
DOI
10.29334/MHSH.2022.12.58.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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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이었던 조선 선조의 왕자 인흥군과 가문의 후손들은 역모에 추대되지 않고 가문의 위상을 지키면서 친진한 이후 문과급제자를 배출하여 종친가의 위상을 지켜나갔다. 인흥군가의 후손들이 그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대 정국의 현실을 이해하면서 현실적인 혼맥을 형성해 나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인흥군가의 이러한 성향은 선조에 의해 인흥군 형제들이 주로 선조 재위 말기와 광해군 연간 동인과 북인계 가문과 혼인하면서 그 사돈들이 정국의 주요 세력이 되었던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조반정 이후 혼인한 인흥군은 인조 국구 한준겸의 인척과 밀접한 여산송씨가의 사위가 되었다. 인조~현종 연간 서인의 집권이 이루어지는 시기에는 왕비가문인 양주조씨, 산림으로 본격 등장하기 시작한 송시열과 관련된 한산이씨 가문 등과 혼맥을 형성해 나가는 등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혼맥의 양상이 바로 인흥군의 신도비문을 비롯한 묘도문자를 서인과 남인의 영수들이 각각 찬술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후 탕평기에도 인흥군가는 주로 당색이 다소 온건한 왕실의 내ㆍ외손 등과 혼맥을 형성해 나가면서 친진한 이후 문과급제자를 비롯 실학자 이서구를 배출하여 종친가로서의 위상을 지켜나갈 수 있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성종 부마 驪川尉 閔子芳家의 혼맥
Ⅲ. 선조 후궁 靜嬪閔氏 자녀의 혼인과 특징
Ⅳ. 士林政治와 仁興君家 혼맥의 양상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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