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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충남대학교 유학연구소 유학연구 유학연구 제51권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01 - 127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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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소론의 영수로 지목되었던 남계 박세채의 양명학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살펴보는 것이다. 17~18세기의 조선에서는 예학에 대한 주자학적 관점의 천착과 동시에 탈주자학적 경향의 학풍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학술적 견해 차이에 근거한 시대 인식으로 인해 사대부 간의 갈등과 분화 역시 한층 심해지고 있었다. 조선 학계에서 양명학은 육구연의 심즉리 계보를 계승한 것으로 판단되어, 이황의 양명학 비판 이후로 줄곧 ‘선학(禪學)’으로 치부되었다. 이런 상황에 더하여 박세채는 육왕학이 유행한 이후로 명나라의 유풍(儒風)이 일어나지 못한 것을 보면서, 조선도 명나라처럼 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했다. 이 같은 이유로 박세채의 학문성향은 도통을 중시하는 벽이단적 성향을 띄게 되었다. 한편 그의 제자인 정제두는 홀로 양명학을 탐독한 후 이를 토대로 학술체계를 세웠으며, 자신의 견해를 스승인 박세채에게 전하였다. 정제두가 학술체계를 세운 만큼 박세채도 논리적으로 대응해야 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왕양명학변」이다. 「왕양명학변」에서 박세채는 󰡔대학고본󰡕, 「대학문」, ‘치양지’, 「주자만년정론」을 대상으로 순차적으로 변론을 진행한다. 이것은 양명학의 출발점과 집대성, 다시 말해 양명학과 주자학이 괴리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왕수인의 학술 전개 과정 전부를 변척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또한 ‘격물’에서부터 양명학의 요체인 ‘치양지’에 이르기까지 왕수인의 문집으로부터 선별한 전거를 제시하고 그에 대해 반박하면서 치밀하게 비판하고 있다. 박세채의 양명학 비판도 비록 이황의 변척과 마찬가지로 ‘양명학은 선학이다.’라는 관점으로 귀결되지만, ① 치양지에 대한 분석이 시도된 점, ② 왕수인 만년 시기의 저술을 비판의 대상으로 선정한 점, ③ 양명학에 대한 비판을 왕수인의 문집까지 탐독한 후 도출하였다는 점 등에서 차별성을 확보한다. 결과적으로 박세채의 변척은 오히려 정제두가 양명학에 대한 고유한 이론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양명학을 대표하는 강화학파가 형성되는 데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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