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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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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동양학 동양학 제7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33 - 251 (1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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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쟈르, 마쟐, 머저르라고 불리는 헝가리인 의열단원이 있다. 헝가리인들은 다른 종족들로부터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마쟈르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왔다. 마쟈르는 제1차 세계대전 후 몽골에서 의열단원 이태준을 만나면서 한국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이태준을 도와 몽골을 경유하던 한국독립운동가들에게 연락과교통편 등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한편, 중국 관내 지역에서 의열투쟁을 계획하던 김원봉은 앞으로의 활동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위력이 큰 폭탄과 권총 등의 무기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뜻밖에도 베이징에서 이태준을 만나 헝가리 폭탄기술자 마쟈르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몽골에 있는 그를 데리고 오겠다는이태준이 운게르 부대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마쟈르는 이태준이 사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신으로 베이징에 와 김원봉을 찾았다. 식민지조선의 처지가조국 헝가리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한국을 극히 동정하던 그가 독립운동을 돕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후 두 사람은 상하이로 가 프랑스조계 내에 폭탄제조소를 차렸다. 의열단원 및 몇몇 중국인들이 그를 도와 폭탄을 제조하였으며,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다. 김원봉은 마쟈르의 폭탄을 이용해 제2차 암살·파괴계획을 추진하였다. 문제는 폭탄을 국내까지 반입하는일이었다. 폭탄 이동 노선은 상하이 ‒ 톈진 ‒ 안동 ‒ 경성이었다. 이때 마쟈르가 상하이에서부터 톈진까지 폭탄등 무기 운반을 맡았다. 서양인들은 치외법권의 적용을 받아 비교적 안전하였기 때문이다. 톈진에 도착한 무기는 무사히 압록강 국경을 넘었지만, 의열단 내 밀정의 신고로 일본에게 발각되면서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마쟈르의 폭탄을 본 일본은 경악하였지만, 의열단이 이 같은 고성능의 폭탄을 직접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기대했던 만큼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지만, 그의 폭탄제조 기술은 의열단원들에게 계승되어 이후 의열단이 무장투쟁을 추진하는 큰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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