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정수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3輯
발행연도
2020.11
수록면
123 - 158 (36page)
DOI
10.31335/HPTS.2020.11.73.123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광해군대 중반에 해당하는 1613~1617년 조선과 건주여진‧후금의 관계를 다룬다. 이 시기에 조선과 명은 급격히 세를 불리던 건주여진‧후금에 대한 군사적 공조를 취하게 된다. 누르하치는 동쪽 방면의 강자인 훌룬을 제압하고, 서쪽 방면의 오랜 숙적이었던 여허부(部)를 본격적으로 공략하였다. 명에서는 건주여진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여허를 적극 지원했고, 아울러 조선을 우군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구체화시켜갔다. 조선에서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는 명분적 당위와 건주여진의 위협으로부터 변경을 방어한다는 전략적 필요에 의해 명과 협력에 응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은 명과의 외교에서 현실적인 중개기구였던 요동아문과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었고, 건주여진과도 별도의 채널로 교섭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무렵 후금(後金)을 건국한 누르하치는 조선에 서신을 보내어 명을 공격할 것임을 예고했다. 조선은 일상적으로 건주여진(후금)에 대한 첩보를 명과 공유해왔지만, 오히려 명측에서 조선과 후금의 연대를 의심할까 우려하여 끝내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1618년 4월 후금이 명을 공격하여 전쟁이 촉발되었을 때, 조선이 조명(助兵) 여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던 기원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건주여진의 동향과 朝·明군사공조의 형성
Ⅲ. ‘胡書’에 대한 對明보고 논의와 공조의 실상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