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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운용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78집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139 - 182 (44page)
DOI
10.17790/kors.2021.09.7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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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헌을 통해 볼 때, 果下馬는 濊의 특산으로 漢代부터 중국 왕실에 알려졌다. 당시의 과하마는 궁중에서 국왕이나 왕후가 이용하던 輦車‧ 羊車 등의 작은 수레를 끄는 데에 이용되었다. 이러한 과하마는 濊가 고구려에게 흡수된 이후에는 역시 고구려의 특산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의 魏晉·南北朝 時代에까지 왕실에 의해 중시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상황은 隋代에까지도 그 명맥이 이어졌으나, 唐代에 들어서는 과하마에 대한 중국 왕실의 애착이나 활용도가 저하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후한서』나 『삼국지』 등 중국 사서를 통해 보면, 과하마를 보유한 濊는 낙랑군 영동 7현 예하에 속해 있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濊지역에는 箕子관련 풍습이나 고조선의 호랑이 토템이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따라서 濊는 낙랑과의 관계로 인하여 漢왕실에 과하마를 보낼 수 있었다고 보인다. 과하마는 고구려와 북위의 교섭 과정에서 삼척마라는 이름으로도 북위에 알려졌다.
唐에서 과하마를 크게 주목하지 않았듯이, 고려 왕조에서도 과하마에 대한 기록은 잘 찾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과하마는 백제 무왕 때 唐에 선물로 보내졌다는 기록이 관심을 끈다. 牧馬와 관련하여 무왕 즈음에 백제가 새로이 확보한 지역으로 주목되는 곳은 탐라 정도이기 때문에, 탐라와 과하마 및 백제의 관계가 究明되어야 한다.
백제가 과하마를 알게 된 것은, 문주왕의 웅진 천도 직후 탐라와의 교류를 시작하고, 동성왕 대에 들어서는 탐라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한 것에 기인한다고 여겨진다. 즉, 탐라는 그 이전 시기 고구려와의 교류를 통해 과하마를 알게 되었으며, 백제는 그러한 탐라에 영향력을 강화한 이후 탐라의 과하마를 梁이나 唐등 중국 왕조와의 교류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1. 序言
2. 中國史에서의 果下馬
3. 三國時代의 果下馬
4. 果下馬와 耽羅
5. 結語
참고문헌
Abstracts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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