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세현 (부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해항도시문화교섭학 해항도시문화교섭학 제25호
발행연도
2021.10
수록면
291 - 336 (46page)
DOI
10.35158/cisspc.2021.10.25.291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일본해군의 발달과정은 대만출병과 류큐병합,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 류큐 대만 조선 등을 둘러싼 동아시아 해양패권을 놓고 일본과 청국 간에 벌어진 해군력 경쟁과 관련이 깊다. 일본의 가상적국이던 청국의 시각에서 일본해군을 어떻게 파악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다. 이 글은 청국이 일본과 유럽에 파견했던 출사대신의 여행기에 나타난 일본해군의 모습을 분석한 것이다. 일본말고도 영국을 주목했는데, 그 까닭은 해군강국으로 일본과 청국 양쪽 모두 영국제 군함과 대포를 대량 구매하면서 서로를 견제했기 때문이다.
1874년 일본의 대만출병은 청국을 자극해 해방대토론(海防大討論)을 가져와 일본을 가상적국으로 생각했고 일본은 자국 해군력의 한계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후 일어난 류큐처분은 청국의 대일 경계심 강화와 더불어 일본에 대한 선제공격론을 불러왔다. 1875년 강화도사건은 일본의 우위를 드러내는 듯 했으나, 1882년의 임오군란과 1884년의 갑신정변에서 청국이 조선에 군함을 파견해 사건을 유리하게 해결하면서 중국의 해군력이 일본을 견제할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갈등이 반복되는 가운데 1886년 8월 북양함대의 일본방문 때 발생한 나가사키 사건은 그 정점을 이루었다.
본문에서 다루었듯이 출사대신의 일기 등을 통해 판단해 보건데 청국의 경우 일본의 군사력을 저평가하는 실수를 범하였다. 일본출사대신 하여장(何如璋) 등은 일본의 군사력이 중국에 미치지 못하므로 류큐 조선문제 등에 무력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일본 해군력에 대한 정보는 부족해 일본 측 자료를 수집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영국출사대신 곽숭도(郭嵩燾) 등은 일본외교관들과 교류하면서 신형군함을 구매하며 해군력을 강화하는 일본에 경계심을 가졌으나 여전히 중국이 견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사실들은 청말 중국인의 일본여행기에 나타나는 해국(海國)일본에 대한 고질적 편견(왜구, 소국, 섬나라 등)과 일맥상통한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막말 메이지 초 해군건설과 대만출병
Ⅲ. 일본출사대신의 여행기에 나타난 일본해군
Ⅳ. 영국출사대신의 일기에 나타난 해국일본
Ⅴ. 북양함대의 일본방문과 나가사키 사건
Ⅵ. 나오는 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6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21-454-002130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