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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진아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72집
발행연도
2021.5
수록면
225 - 263 (39page)
DOI
10.18496/kjhr.2021.05.7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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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망명은 개항 이후 정치사의 전개 속에서 재탄생한 개념이다. 본 논문에서는 한국 근대 망명의 발생과 진행, 종식의 과정을 유길준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유길준은 1896년 2월 아관파천으로 인해 실각하였고 역모 혐의를 받으면서 국내에서 약 2개월 간 은닉 생활을 했다. 하지만 정계 복귀 가능성이 묘연해지자 그해 4월 일본 도쿄로 망명하였다. 그는 일본에서 후쿠자와 유키치와 일본정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았고, 일본내 체류 중이던 한국인 망명자, 유학생 등과 교류하였다. 한국인 망명자들이 한국 내정 개혁을 통한 정계 복귀를 도모하는 가운데, 유길준 역시 한국 내정 개혁 계획을 세웠다. 유길준은 고종의 측근을 제거할 것과 정부 개조를 내용으로 하는 정변을 모의하였고, 일본에서 정변 자금을 모집하였다. 하지만 정변 모의는 실행에 옮겨지지 못한 채 발각되었고 이를 계기로 유길준은 일본 내 원격지 섬으로 강제 이주 되었다. 이후 일본의 한국 ‘보호국화’가 확정되면서 일본정부가 한국인 망명자들의 귀국을 추진하였지만 고종은 유길준을 비롯한 일부 망명자들이 을미사변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이유로 사면과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1907년 8월 고종 강제 퇴위 후 유길준은 귀국하였고, 그의 사면 문제를 둘러싸고 일본 측과 순종이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그 결과 일본 측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어 유길준은 사면되었다. 결국 유길준의 11년 동안의 망명생활은 일본의 정치적 우위를 통해 종식되었고, 이는 유길준의 귀국 후 행보에 제약으로 작용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실각과 일본 망명
3. 정변 모의의 경위와 발각
4. 귀국 과정과 망명의 종식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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