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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계승범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열상고전연구 제71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47 - 278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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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정묘호란의 발발 이유로 학계에 한때 정설처럼 유행한 조선의 외교노선 변화 문제를 재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계해정변(인조반정)을 계기로 조선의 외교 노선이 예전의 친명사대로 분명히 변했을지라도, 후금의 조선 침공과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정묘화약의 내용을 통해 침공의 원인이나 목적 등 제반 배경을 추출하는 방법을 활용하였다. 그 결과, 1620년대 중반 후금이 겪던 경제 문제와 정묘호란 사이에는 연관성이 별로 없음을 논증하였다. 강화협상 과정에 보이는 최대 현안은 거의 다 정치ㆍ외교ㆍ군사적 사안이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침공의 직접 동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런 정치ㆍ외교ㆍ군사적 상황은 이미 누르하치 치세부터 만성화되어 있던 일상이었지, 홍타이지가 즉위할 무렵에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사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묘호란은 왜 누르하치가 죽고 홍타이지가 즉위한 지 불과 석 달 만에 갑자기 전광석화처럼 발발하였을까? 이 글에서는 누르하치와 홍타이지의 조선 정책이 처음부터 매우 달랐음에 주목하였다. 후금이 요동을 공격하기 시작한 1618년 봄부터 홍타이지가 즉위한 1626년 가을까지 9년 가까이 후금 지도부는 조선 정책을 놓고 양립하였다. 征明戰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서는 후방의 조선을 먼저 정복해야 한다는 강경론은 홍타이지가 이끌었다. 이에 비해, 누르하치는 조선 정복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형성하는 것은 불리하다는 이유로 조선 공격을 주저하였다. 이 논문의 결론은 그런 누르하치가 죽고 강경파 홍타이지가 즉위한 사건, 곧 후금의 군주 교체가 정묘호란의 직접 동인이라는 것이다. 전략상 조선을 먼저 쳐야 한다고 줄곧 주장한 홍타이지에게는 조선 침공이야말로 이제 후금의 칸이 바뀌었음을 안팎으로 분명히 각인시키는 군사작전이 필요했다. 또한, 명나라의 ‘혈맹’이던 조선을 후금의 맹약체제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누르하치도 하지 못하던 것을 자신이 즉위하자마자 단번에 성취한 혁혁한 전과였다. 조선에 대한 군사작전과 맹약 체결을 통해 홍타이지는 자신의 거시적 전략이 옳았음을 만천하에 증명한 것이다. 정묘호란의 동인은 바로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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