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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지원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한중관계연구 한중관계연구 제7권 제3호
발행연도
2021.10
수록면
157 - 177 (21page)
DOI
https://doi.org/10.33575/KCRR.2021.7.3.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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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청초 동북아시아 국제 정세 변화의 중심에는 누르하치가 있었다. 누르하치가 1583년 기병한 이후 전개되는 약 6-70년간은 지속된 전쟁 속에서 만주(滿洲)세력의 굴기(崛起)로 요약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만주 굴기의 배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문제였다. 계속된 전쟁이라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르하치는 여진 통일 과정에서 명조와는 이중적 태도 즉 전쟁과 조공을 유지하였고, 조선과는 평화 관계 유지를 통한 경제적 협력을 모색하였다. 이와 함께 누르하치는 안정적 경제 기반 확보를 위해 요동점령에는 성공하였지만, 만한갈등에 직면하면서 안정적 농업생산물의 확보에는 실패하였다. 그 뒤를 이은 홍타이지(皇太極)는 당시 후금이 당면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조선으로부터 물자 공급을 희망하였지만, 명조와 오랜 우방인 조선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홍타이지는 무력을 통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묘호란(丁卯胡亂)’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전쟁의 결과로 얻은 가장 중요한 것은 양국 간에 진행되는 무역관계인데, 이 무역은 크게 사행무역과 변시무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형태의 무역활동은 후금 측의 강력한 필요에 따른 강압적 요구로 진행된 관계로 조선 측 입장에서는 매우 소극적이고 피동적이었다. 사행무역은 1년에 2번 정식으로 파견되는 사신단을 수행하는 상단(商團)이 진행하는 무역으로 양국 간 무역 중에 가장 활발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이에 비해 변시무역은 양측이 합의 하에 시작하였지만, 여러 가지 장애 요인으로 제대로 진행된 경우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여러 가지 한계를 나타낸 변시무역은 점차 유명무실해졌고, 사행무역도 종종 정해진 기일을 지키지 못하고 늦어지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후금 측의 불만이 누적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양국 간의 문제는 다시 무력을 통한 해결 시도로 이어져 1636년에 병자호란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17세기 전반 동북아시아의 국제관계의 재편과정에서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관계(關係)’는 바로 ‘무역’을 통한 안정적 경제력 확보를 위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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