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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구범진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동아문화 東亞文化 第58輯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179 - 206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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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봄 후금은 조선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그들의 한(汗) 홍타이지를 ‘황제’로 추대하는 일에 조선도 동참할 것을 요구하였다. 조선이 그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하였고, 결국에는 1637년 초 그들의 무력 침공, 즉 병자호란을 겪게 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후금의 사신 일행은 홍타이지에게 복속한 몽골의 ‘16국 49버일러’들이 조선 국왕에게 보내는 한문 서신을 지참하였는데, 이 글에서는 ‘16국 49버일러’들이 보낸 서신 원본의 서식과 인장을 통해 병자호란 전야 후금·조선 관계의 이면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먼저 서신의 서식을 보면, 훗날에 편찬된 『청태종실록』은 몽골의 버일러들이 이 서신에서 후금의 한 홍타이지를 조선의 국왕 인조보다 상위의 존재로 취급한 것으로 기록하였지만, 서신 원본에서는 홍타이지와 인조가 서로 대등한 존재이다. 이러한 차이는 물론 실록이 서신 원본을 왜곡한 데에서 비롯한 것이다.
다음으로 서신의 인장에는 만주 문자로 “dorolon i jurgan i doron”이라는 자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예부의 인장[禮部之印]”이라는 뜻이다. 몽골 버일러들의 인장이 아니라 후금 예부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당시 몽골 버일러들이 한문 서신을 작성할 능력도 없었으라는 점을 아울러 고려하건대, 이 인장은 서신의 실제 작성자가 몽골의 버일러들이 아니라 후금의 예부였다는 사실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문서의 작성자와 인장의 주인이 일치해야만 문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상식에 입각해서 보자면, 이 문서는 ‘가짜 문서’였다고 말할 수 있다.

목차

1. 머리말
2. 병자년(1637) 이월 후금 사신의 조선행과 외번몽고 서신
3. 외번몽고 서신의 서식: 후금·조선 간 형제 관계의 반영
4. 외번몽고 서신의 인장 : “예부지인(禮部之印)”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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