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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양호 (마산대학교)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27권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3 - 2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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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는 역사적으로 대전환기였던 고려 말 수차례 명(明)과 일본을 다녀왔다. 뛰어난 외교가였을 뿐만 아니라 성리학자이자 시인이기도 했던 포은은 사행 중에 많은 시를 남겼다. 본고는 사행시를 중심으로 포은의 천하 인식과 문명에 대한 인식 양상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포은은 공민왕이 반원 개혁정책으로 왕권 강화를 도모하던 시기에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공민왕의 친명 정책과 명 사행의 영향으로 포은은 친명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절반만 입경(入京)하였지만 6차례나 명 사행에 나서, 중원을 지배한 명나라의 강한 정세와 우수한 문물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은 한족이 세운 나라이므로 성리학적 사고에 비추어 볼 때 정통성도 갖추었다. 포은에게 명은 「원의 사신을 맞아들이지 말기를 청하는 소」에 표현한 것처럼 천하의 의주(義主)로 대접할 만한 대상이었다. 성리학에 기반한 명분론적 화이관과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형세?문화적 화이관에 따라, 포은은 명나라를 천하의 중심이자 문명 질서의 중심으로 인식하였다. 이는 사행 중에 지은 시에 잘 나타나는데, 명 사행시와 일본 사행시에 나타난 포은의 태도와 표현에는 사뭇 차이가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포은의 문명의식을 둘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먼저 명 사행시를 살펴, 포은이 명을 중화 문명으로 인식하고 이를 따르려 하였음을 확인하였다. 포은은 명 방문과 황제와의 만남에 감격했고, 명의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에 감탄하였다. 또 명이 천하를 통일하였으니 태평한 시절이 오리라 희망하며, 중화와 이적이 한집안이 되었음을 여러 시에서 강조하였다. 명 중심의 문명 질서를 인식하고, 고려도 같은 질서를 따르고 있으니 중화와 다를 것이 없다는 문화적 동질감과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다. 다음으로 일본 사행시 「홍무 정사년에 사명을 받들고 일본에 가서 지은 시」를 살펴, 오랑캐의 풍속이 남아 있는 일본에 대한 포은의 이질감과 우월감을 확인하였다. 일본에 머무르며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 향수(鄕愁), 낯선 풍속에 대한 이질감이 시 전체에 걸쳐 강하게 드러나 있었다. 포은은 중화 문명을 따르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민족의 문화에는 거리감을 느끼고 고향을 더욱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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