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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오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27권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65 - 205 (4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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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고려말에서 조선의 16세기 전반기까지 활동한 학자들이 당시 수용한 성리학의 개념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나갔는지 그 추이를 통시적으로 탐구하고자 하였다. 성리학이 고려에 수용되면서 이색은 고려에서 가장 먼저 주돈이(周敦?)의 무극태극(無極太極)에 대해 이해를 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아울러 천즉리(天卽理)나 경(敬), 의(義) 등의 성리학 개념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수용하여 이해를 했다고 보았다. 또한 이색에 의해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祖)’로 일컬어지는 정몽주의 ‘논리(論理)’의 ‘이(理)’는 송(宋)대에 정주(程朱)에 의해 새롭게 밝혀지고 호병문(胡炳文) 등에 의해 해석된 천리(天理)의 이(理)이고 성리(性理)의 이(理)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조선초의 학자인 정도전과 권근 등은 성(性)을 이(理)로 이해하고, 심(心)을 이(理)와 기(氣)의 합(合)으로 이해하여, 그뒤 조선 학자들의 심성 개념의 이해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성리학의 주요 개념인 이기(理氣)의 선후先後) 문제에 대해서는 조선조 세조대 관료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정여창 등은 이선기후(理先氣後)를 주장했고 그 설이 당시 학계의 공감을 얻었으나 이이(李珥)에 의해 이(理)와 기(氣)는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선후로 말할 수 없다는 것으로 정립되었다.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에 대해서는 고려말부터 16세기 전반기까지는 불교와 도교적 이해에서 적멸(寂滅)이나 기(氣) 등으로 보는 경향도 있었고, 이(理)이기도 하고 기(氣)이기도 하다거나 이(理)와 기(氣)를 겸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했으나, 이황 등에 의해 태극을 이(理)로 보는 학설로 정해지게 되었다. 천리(天理)에 대한 이해도 고려말 이색 등에 의해 시작이 되었으나 천리를 보존하고〔存天理〕인욕을 막는다〔?人欲〕는 성리학적 천리에 대한 논의는 16세기 전반에 이언적과 주세붕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창되고 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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