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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재빈 (홍익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6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73 - 108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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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주자의 숭모열이 심화됨에 따라 그의 은거지인 무이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황은 무이산에 대한 지리지와 그림, 시를 함께 감상하였고 이에 제발과 차운시를 지어 적극적인 해석으로 나아갔다. 이황의 행위는 이후 17-18세기 퇴계학파에게 무이구곡도 감상의 전범이 되었다. 본 논문은 강세황의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제작 사례를 중심으로 18세기 근기 남인의 무이구곡도 제작과 감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강세황은 1751년 이익의 주문을 받아 주자의 <무이도>와 이황의 <도산도>를 한 쌍으로 제작함으로써 주자에서 이황으로 연결되는 도맥을 강조한 것이다. 이익은 주자의 「무이도가」에 대한 해석에서 세속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엄격한 학문적 독법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이익의 의도는 강세황의 회화 제작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추측된다. 강세황은 기존의 <무이구곡도>에서 의인화된 기이한 경물을 모두 제거하고 남종문인화풍으로 고쳐 그렸다. 즉 무이산에 잔존하는 도가적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주자의 무이산으로 재해석한 것이라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강세황은 5년 후, 이익의 문도이자, 유경종의 사돈인 남하행에게 <무이구곡도>를 그려주었다. 강세황은 횡권의 <무이구곡도>를 화첩으로 재구성하였다. 화첩 <무이구곡도>는 한 화면에 한 곡씩 배치되었고, 여기에 상응하는 <무이도가>의 아홉 구절이 나란히 실림으로써 시와의 관계가 더욱 밀접해졌다. 이러한 화첩 형식의 주문은 남하행의 기획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하행은 1756년부터 1781년까지 긴 시간 화첩을 기획하고 내용을 추가하였다. 남하행은 시와 차운시, 주해, 지리지 등을 <무이구곡도> 그림 위에 재배치함으로써 무이산의 경물에 대한 입체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였다. 주자의 글과 이에 대한 이황과 이익의 주해는 <무이구곡도> 위에서 조우하였다. 이처럼 남하행의 감상을 통해 <무이구곡도>는 그가 무이학을 집적하는 틀이자, 주자로부터 이황, 이익을 거쳐 내려오는 도맥의 상징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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