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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상우 (한성대학교)
저널정보
한성대학교 한성어문학회 한성어문학 한성어문학 제37권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77 - 10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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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월암 최일하의 삶과 의식에 대해 은둔관을 중심으로 살펴보 고자 한다. 그는 조선의 근간이었던 주자학의 질서가 붕괴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출사를 포기하고, 스스로 은사의 삶을 선택했다. 당쟁이나 외적인 압력에 의한 타의적 은거가 아닌 자발적인 은거였기 때문에 일찌감치 그만의 은둔관이 정립되어 있었다. 그가 <월암기>에서 스스로 밝힌 은둔관의 핵심은 ‘우물(寓物)’과 ‘낙지 (樂志)’이다. 최일하에게 우물(寓物)은 자연에의 의지(依支)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모든 자연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변하며 유구 한 것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자연에 대한 지향점을 축소하여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점은 그의 은둔에 대한 의식의 단면을 보다 분명하게 규 지(窺知)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은둔에 대한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낙지(樂志)의 실천 양상은 세 가지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독락 (獨樂)과 산수유람, 교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스스로를 은둔자로 규정하고, 나름의 은둔관을 정립 하면서까지 은둔을 하고자 한 목적은 무엇일까? 그는 여러 번 향시에 합격할 정도의 실력이 있었다. 이후 과거에 응시했는지 아닌지는 정확 하게 알 수 없으나, 남아있는 기록으로 보았을 때 음직 이외에는 벼슬 을 하지 못했다. 그는 도잠과 이원의 은거 방식을 깊은 흥취라고 표현 하며 칭송했는데, 월암과 이들의 결정적인 차이는 벼슬의 유무이다. 이 들은 벼슬을 하다 각각의 이유로 사직을 하고 은거를 선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월암은 스스로의 은둔관을 정립하면서 자존감을 은둔자의 모습으로 규정하고자 했다. 또한 교유관계나 사회적 활동을 통해 유가의 관계지향적 삶을 살았 다는 점은 비슷한 처지의 문사들끼리 삶을 구성하고 공유했다는 것이다. 즉, 월암을 포함해 경제적 여력이 있으며, 당대에 나름대로 당당하게 살아간 수많은 알려지지 않은 범상한 사대부들이 자존감을 고양시킨 여러 방식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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