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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인섭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법과사회이론학회 법과사회 법과사회 제52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243 - 285 (4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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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가인 김병로 선생의 생애 말년, 그중에서도 1963년의 정치활동을 정리한 것이다. 1963년은 5.16군정이 민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로서, 김병로는 군정 연장에 반대하고, 민간정치세력을 규합하는 최전선에 섰다. 그는 반군정의 야권통합, 그리고 야권 대통령 후보의 단일화에 매진했다. 군정세력은 정치일정을 조종하면서 민정이양을 기획했다. 김병로는 군정세력에 맞설수 있는 민간정치세력의 수립의 구심점이었다. 1963년 1월부터 5월까지의 김병로 등의 노력은 ‘민정당’의 결성에 이르렀고, 김병로는 대표최고위원을 맡았다. 그러나 군사정권이 정치인 해금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야권 내에서의 민주계와 신민계의 갈등이 첨예하게 벌어진 터라, 폭넓은 야권통합은 쉽지 않았다. 김병로와 정치원로들은 ‘국민의당’을 결성하여 대동단결을 기하기로 하여 창당대회까지 열었으나, 대통령 후보를 둘러싼 충돌을 해소하지 못하여 야권통합에 실패하고 말았다. 김병로 자신은 사적인 정치 욕심을 처음부터 배제했다. 건강과 지명도, 당선가능성 등에 비추어볼 때 다른 인물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정치명망가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태도였다. 정치전선에서 그는 열매 거두는 자가 아니라 씨뿌리는 자의 심정으로 임했던 것이고, 대의에 입각하여 자아를 양보할 것을 촉구하였다. 군정을 종식하고 민주정치를 일으키자는 그의 집념은 1963년의 시점에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일관된 자세는 민주주의 법률가-정치가의 한 모범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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