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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성강현 (동의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86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201 - 240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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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전쟁 기간 북한군 포로는 14만 명정도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바꾸자 급증한 포로를 수용하고 관리하기 위해 부산에 포로수용소가 마련되었으나 보안상의 문제 등으로 인해 이듬해 거제도에 포로수용소를 옮겼다. 포로는 인민군, 중국군 등 원 소속에 따라 대단위로 수용되어 이념 갈등의 소지가 있었다. 수용소 운영이 포로들의 자치로 이루어져 단위 수용소를 장악하기 위한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의 주도권 다툼이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포로들은 친공과 반공으로 갈리게 되었다. 1951년 7월의 정전회담의 개시는 포로수용소를 이념 갈등의 장으로 만들었다. 수용소를 장악하기 위한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의 주도권 다툼은 유혈사태화 되었는데 ‘9ㆍ17폭동’은 그 중 하나였다. 구술 증언을 통해 85수용소에서 자행된 ‘9ㆍ17폭동’에서 천도교 포로 14명 내외가 살해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 사건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NARA문서에서 ‘9ㆍ17폭동 사료’가 발견되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었다. 이 사료에는 한 박찬호 등 15명의 포로가 강만인 등 친공포로에 의해 북한에서 천도교청우당 활동 등 반공활동을 빌미로 인민재판을 열고 막사 폴대 등으로 무참히 학살하였다. 천도교 포로가 학살된 이유는 송환거부 혈서 작성이었다. 천도교는 해방후 북한에서 자주국가 건설을 위해 북한 정권과 연합전선을 펼쳤지만 사회주의 체제가 공고화되면서 배제되었고 이것이 북한 천도교인의 반공 활동과 포로의 송환 반대로 나타나 친공포로에 의해 살해되었다. 85수용소에 발생한 ‘9ㆍ17폭동’은 천도교 포로의 반공 활동으로 인한 친공포로의 학살사건이었다. 그리고 천도교 포로들은 이를 기점으로 반공의 길에 앞장서게 되었다. 이는 지금까지의 반공포로의 발생이 이승만 정권의 자유주의적 우월성과 미군의 인도주의적 정책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시각과는 다르다. 천도교 포로들의 반공 활동은 전쟁 이전에 이미 북한에서 사회주의 체제에 의한 천도교 세력에 대한 배제에 기인하였다. 북한 사회주의 정권 수립의 한 축을 담당했던 북한 천도교 세력이 사회주의 정권 확립 과정에서 배제되고 주도적 인물들이 사회주의 정권에 의해 제거되자 이에 대한 반발이 수용소에서의 반공 활동으로 구체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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