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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기인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민족문학사연구소 민족문학사연구 민족문학사연구 제59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07 - 342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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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억이 한시 번역을 한 이유와 그의 한시 번역과 그가 창안한 ‘격조시형’ 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본다. 조선적 시형식에 대한 탐색 과정 중에, 김억은 자신이 조선적시형식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고, 민요와 시조는 당대적인 조선인의 사상과 감정을 담는데 한계가 있고, 특히 시조는 음률의 필연도 없다고 비판했다. 따라서그는 자신의 시론에 매우 잘 부합하는 정형시이며, 번역관에 적절하게 함축적이고, 친숙했던 한시로 돌아가서 이를 번역하면서 새로운 ‘조선적 근대시’를 실험하였다. 그의 한시 번역은 여타 서구시, 일본시, 인도시 번역 등과 다르게, 처음부터 일정한 음수율을 지키고 압운을 하려는 모습이 보이며, 이는 1925년부터 1930년을 이르는 시기에 7.5조로 고정되어 간다. 이는 이후 ‘근대적 조선시’로서의 격조시형을 발표하게 되는 것과 관련있다. ‘격조시’는 ‘格調’라는 표현이 한문전통에서 ‘기성의 권위를 존중하며 형식을 중시하는 시론’ 인 것처럼 일종의 시 창작 교과서로 사용되고자 하는 김억의 바람이 담겨 있다. 음절수의 정형, 압운, 음수의 기층단위인 음력을 설정한 것 등은 한시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시이 격조시형을 가지고 800편에 달하는 한시를 번역한 것은, 한문의 풍요로운 전통을 조선어로 전유하려는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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