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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53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59 - 19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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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와 왕통을 정당화한 뒤 태종은 왕권을 확립해 나아갔다. 태종의 과제는 漢陽 還都였다. 定都 논의에서 대신들이 모두 松京에 머물려 하자 태종은 양경제를 수용하는 선에서 정리하였다. 가뭄 뒤의 장마로 물난리가 난 와중에서 1404년(태종 4) 8월에 세자를 책봉하였다. 태종은 嫡長을 세자로 책봉하여 태조-태종-세자로 왕통을 바로 세웠고, 민심을 안정시켰다. 9월초 태종은 태조의 명에 힘입어 1405년 10월에는 한양으로 옮겨갈 것임을 선포하였다. 10월 초 태종이 宗廟에 들어가 동전을 던져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였다. 한양 정도로 태종은 태조의 칭찬을 들었다. 이렇게 태종은 왕권의 안정에 중요한 두 과제를 해결하였다. 태종은 1404년 10월 중순 대표적 공신·인척인 李居易와 그 아들들을 내쫓고, 11월 중순에 開國·定社·佐命 3공신이 동맹하여 충성을 다짐하도록 하여 훈척을 제어하였다. 이어 태종은 1405년 정월에 육조를 정2품아문으로 승격하고 서무를 귀속시켜서, 왕이 인사를 포함하는 행정체계와 군사를 장악하고 중요 사안만을 의정부와 협의하는 체제로 바꾸려 하였다. 태종은 1405년(태종 5) 3월 이후 심한 가뭄과 기근 속에서 한양 환도를 준비하고 추진하여 10월에 한양으로 돌아왔다. 태종은 10월 8일 松京을 출발하여 11일에 漢京에 이르러 종묘에 알현하였고, 20일 새 離宮 창덕궁으로 이어하여 한양 還都를 마무리 지었다. 세자 책봉과 한양 정도, 대표적 공신 인척의 축출하는 훈척 제어와 육조를 승격하여 행정체계를 장악한 위에서 1405년(태종 5) 한양으로 환도함으로써 태종의 왕권은 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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