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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영숙 (상명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86호
발행연도
2022.2
수록면
247 - 273 (27page)
DOI
10.21490/jskh.2022.2.8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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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친청파요 동도서기론자로 알려진 김윤식은 개화기에 정권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반면 두 차례에 걸쳐 16여 년 동안 유배생활을 거치는 등 고난과 역경도 많았다. 김윤식은 조선이 소국이기 때문에 서양제국과 평등한 자주외교 관계를 맺는 한편으로 청과는 사대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조선의 자주권을 침해받지 않는 유리한 외교노선으로 보았다. 이와 같은 인식에서 그는 고종의 반청자주 노선에 적극 호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갑오개혁은 친일개화파가 포진한 군국기무처가 중심이 되어 국왕권을 제한하는 입헌군주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개혁 방향은 전통왕정체제를 고수하되 재상과 관료들의 협치를 상정했던 김윤식의 생각과 닿아있었다. 또한 동교가 사회적 원리로서 여전히 작동한다면 서법의 확대수용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는 김윤식이 친청에서 친일개화파로 합류하여 현실정치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일본에 외교권이 강탈당하고 국권이 몰락해가던 때에 김윤식은 또 한 차례 유배를 겪은 후 동도의 핵심적 가치인 도덕과 의리가 사실은 六藝라고 하는 器에서 나온다는 인식의 전환을 보였다. 그에 따르면 동도와 서기는 구분할 필요 없이, 신구학의 절충과 혼용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한 융합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곧 동도와 서기를 상보적으로 융합하면서 근대화를 이루어 나가는 방식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조선 지배는 확고한 사실이 되었고, 김윤식 또한 일흔이 넘어 적극적으로 일본에 저항하기도, 의욕적으로 일본을 이용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국익을 유일한 시비의 기준으로 삼으며 현실적인 삶을 추구한 인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고종의 반청자주와 친청 사대주의자의 길
3. 갑오개혁의 大義와 친일개화파의 길
4. 신문명의 도래와 현실 순응의 길
5.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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