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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수경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한국근현대미술사학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43집
발행연도
2022.7
수록면
45 - 79 (35page)
DOI
10.46834/jkmcah.2022.6.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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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공개되고 있는 ‘권진규 컬렉션’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전에 나온 전시자료를 바탕으로 일본 유학시기와 귀국 후 참여한 단체전과 개인전, 사후 전시로 나누어 권진규가 조각가로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시도되었다.
권진규가 생전에 열었던 세 번의 개인전은 개막식 사진을 비롯해 리플릿과 브로슈어, 포스터, 방명록, 전시관련 스크랩북 등 많은 자료가 남아있어 권진규의 정체성을 살펴보는데 유용하다. 특히 리플릿과 브로슈어를 통해 조각가 권진규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었다. 1965년 수화랑의 기획으로 열린 첫 개인전에서 권진규는 조각가로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나갔다. 이는 추상성이 강한 부조 작품을 선보인 반면, 동양성이 강조된 리플릿의 표지에서 잘 드러난다. 그에 비해 1968년 도쿄 니혼바시화랑의 초대로 열린 두 번째 개인전은 일본 미술계의 관심과 호평에 힘입어 권진규가 테라코타 작가로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1년 명동화랑에서 열린 세 번째 개인전에서 권진규는 건칠이라는 재료를 새롭게 시도하고, 전통을 기반으로 “한국에서 리얼리즘을 정립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를 마지막 개인전 브로슈어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인물 흉상들을 배경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당당하게 분출시켰다.
이처럼 조각가로서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것과 달리 권진규에게는 ‘비운의 조각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그 계기는 죽기 얼마 전, 가장 춥고 힘든 시기에 만났던 지인들이 그의 죽음을 미술계와 사회의 몰이해 때문으로 묘사하면서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가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되면서 작품보다는 작가의 삶이 부각되는 결과를 낳았다. 권진규에게 덧씌워졌던 ‘비운의 조각가’라는 외피를 벗겨내고자 아카이브 분석에 집중한 이 연구는 자료간의 비교를 통해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작가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 연구를 계기로 아카이브를 통한 미술사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목차

Ⅰ. 서론
Ⅱ. 일본 유학시기: 《이과전》과 《일양회전》 기록
Ⅲ. 귀국 후 전시자료
Ⅳ. 사후 전시기록
Ⅴ.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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