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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영화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89호
발행연도
2022.11
수록면
297 - 322 (26page)
DOI
10.21490/jskh.2022.11.89.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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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는 전쟁이 끝난 후 비교적 안정된 시기로, 자연적인 현상으로서의 재이와 이에 대한 대응을 좀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8세기 중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재이가 발생한 시기는 성덕왕대로, 재이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대응도 적극적이고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특히 성덕왕대의 재이는 그간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사상적 측면에서 당대 사회와 연결해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어왔고, 이에 대해 대체로 유교정치의 적극적 시행과 정치윤리관의 표출로 설명되었다. 8세기 재이에 대한 대책은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중시(시중)의 임면, 두 번째는 진휼, 세 번째는 사면, 네 번째는 관련 관사의 설치 및 증원이다. 이 중 관사의 설치나 관원의 증원은 재이에 대한 즉각적 대응이라기보다는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대비 혹은 효율적인 대응을 하기 위한 체계 마련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된다. 특히 성덕왕 12년(713)에 설치된 전사서는 제사, 즉 길례를 전담함으로써 국가제사를 체계적으로 시행하는 데에 주력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삼국사기』 제사지에 나열되어 있는 “或因別制 或因水旱”과 관련된 제사는 재이에 다른 부정기적 제사로 파악된다. 대개 천문, 水旱, 역병에 대한 대응 제사가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천문현상에 대한 대응은 日·月·星變을 국가적 재난이나 군주의 안위와 관련된 예징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며, 水旱과 역병에 대한 대응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제사를 통해 재이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성덕왕대의 전사서 설치는 이러한 의미에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재이의 양상과 대응
3. 성덕왕대 전사서 설치와 “或因別制 或因水旱”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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