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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진교 (안동대학교)
저널정보
실천민속학회 실천민속학연구 실천민속학연구 제26호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223 - 24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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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3(1899)년은 봄 가뭄이 심했으며, 당시 실록에서 보이는 기사들을 통해 가뭄과 기우제가 국정운영의 핵심적인 사안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은 외세 침탈과 그에 따른 한국사회의 반응, 서구적 문물의 도입으로 야기된 전통과 근대의 조우(遭遇) 문제 그리고 근대적 개혁과 그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나 불안의 심화 등과 같은 맥락 속에서, 당시 가뭄과 국행 기우제의 문화적 함의를 해명해 보고자 하였다. 1899년은 대한제국의 시기로 내부적으로는 사회적 모순이 심각한 수준으로 축적된 상황이었고, 외부적으로는 외세의 국권침탈이 본격화되는 시점이었다. 예를 들면 일제의 경제적 침탈로 인해 물가 및 곡가가 폭등하고 있었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중들의 몫이었다. 민중들의 재이관(災異觀) 속에서 이와 같은 상황은 사회적 질서를 깨뜨리는 위반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가뭄에 대한 민중적 해석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전차 폭동이었다. 당시 민중들은 전차와 같은 서구적 문물의 도입을 가뭄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반면 왕을 위시한 정부 당국에서는 기우제를 비롯한 다양한 차원의 교정 행위를 통해 사회적 통합을 시도했지만, 가뭄의 원인에 대하여 민중들과 같은 수준의 해석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한편 거듭 기우제를 지내고 있었음에도, 사회적 불만과 갈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전차 폭동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사회적 모순과 외세의 침탈과 같은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행 기우제의 사회 통합적 효과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목차

[국문초록]
1. 가뭄과 기우제
2. 가뭄의 전개와 사회적 갈등의 심화
3. 전차 폭동과 국행 기우제
4. 사회적 갈등과 봉합의 드라마
참고문헌

참고문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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