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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보라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90호
발행연도
2022.3
수록면
213 - 252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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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素谷 尹光紹(1708~1786)가 「孤舟錄」을 저술한 동기는 무엇이며, 「고주록」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재구했는지 살펴보았다. 윤광소는 尹拯의 각종 저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懷尼是非와 관련된 소론의 의리를 정립하고자 했다. 이처럼 윤광소는 윤증의 뒤를 잇는 소론계 문인 가운데 핵심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학계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윤광소는 「고주록」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고자 했다. 윤광소의 전체적인 저술 경향을 고려했을 때, 윤광소는 당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변론하여 세간의 비판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를 강하게 지니고 「고주록」을 저술했다고 판단된다. 그의 문집에는 문예미를 추구하거나 감정의 진솔한 표현을 위주로 하는 시문이 거의 없고, 자신과 가문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 주를 이룬다. 또한 윤광소는 문집 이외에도 다수의 저술을 남겨, 회니시비 이후 정치적 열세에 속했던 소론, 특히 노성 파평윤씨 가문의 무고함․정당함을 드러내고자 했다. 「고주록」은 정치적 목적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저술이다. 윤광소는 「고주록」에서 자신이 오로지 능력에 의해 영조에게 신임받았음을 명확히 하고, 자신을 공격하던 반대 세력은 탕평 의리와는 거리가 먼 자들로 형상화했다. 제3자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윤광소가 반드시 의리의 측면에서 정우량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영조실록』의 사평에서는 윤광소가 사적인 원한 때문에 정우량을 공격했다고 하였으며, 윤광소가 사사로이 자신의 선조를 변호해 선정신 송시열을 공격한다는 비난은 윤광소 생애 내내 따라다녔다. 이처럼 윤광소의 정치적 행보를 둘러싼 세간의 평이 엇갈렸다.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린 윤광소로서는 자신이 직접 자신의 행보를 변론하고 의혹을 해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윤광소는 「고주록」을 통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 것 같다. 이처럼 윤광소는 평생에 걸쳐 자신과 가문의 입지를 변론하고 소론의 의리 명분을 확립하고자 노력했지만, 그의 노력은 당대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한 듯하다. 윤광소 이후, 그의 가문에서 정계에 진출한 자가 드물었으며, 윤광소의 학문 역시 가문의 후손이 아닌 영남의 강필효에게로 이어진다. 아울러 윤광소가 자편한 문집은 윤광소가 세상을 떠난 지 90년이 지나서야 간행된다. 윤광소가 이러한 미래를 예견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국 윤광소 이후 윤광소의 무함을 풀어줄 자는 윤광소 자신 이외에 없었다. 윤광소의 「고주록」은 윤증 이후 수세에 몰린 파평 윤씨 가문의 후손이 혼란한 黨爭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남고자 한 기록이자 자기 변론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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