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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보광 (가천대학교)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97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27 - 54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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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려가 일본에 1079년에 문종의 질병 치료를 위해 의사를 요청한 <1079예빈성첩>과 고려가 남송으로 몽골에게서 탈출한 남송인 3인을 송환한 <1259예빈성첩> 등 두 건의 예빈성첩 사례가 轉寫되어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토대로 牒이 고려만의 문서 형식이 아니라 당대 이래 동아시아 諸國에서 널리 사용되는 문서이며, 고려는 주변의 나라들과 牒을 통해 외교적인 소통을 하였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서 牒이 외교 현장에서 사용되는 국서로, 일종의 외교문서였다고 정리하였다. 다음으로 당송대, 특히 사마광의 『서의』와 『경원조법사류』에 기록된 송대 牒式을 정리하였다. 양자의 비교를 통해 기본적으로 서식 구조가 같지만 약간의 차이도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어서 <1079예빈성첩>, <1259예빈성첩>과도 비교하였다. 이를 통해 고려의 두 첩문 사례 또한 송대 서식과 유사하며, ‘當省’과 같은 표현이 있어 고려의 실정에 맞도록 변형하여 사용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국초부터 당대 문서나 『서의』의 등장 사례로, 고려가 성종대에 서식을 마련하였을 것이라는 점도 재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예빈성첩>은 첩을 소지한 일행의 방문 목적이 공식적임을 보증하면서 고려의 요청 등을 전달하는 외교적 소통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1079예빈성첩>과 <1259예빈성첩>이 각기 일본과 남송으로 고려가 보낸 첩인데, ‘牒’과 ‘牒上’, 서명한 관직자의 차이 등을 통해 고려가 송과 일본에 대해 등차를 두어 차별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牒에 담겼다고 보았다. 이는 고려가 인식하는 외교 관계에서의 等差를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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