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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재성 (청암대학교)
저널정보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남도문화연구 남도문화연구 제44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535 - 574 (40page)
DOI
https://doi.org/10.31929/namdo.2021.4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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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운동의 배경으로서 사회·경제구조를 밝혀보기 위해 20세기 순천 지역에서 일어난 농업경제의 구조 변화를 추적하였다. 구조 변화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농촌 권력도이동했다. 생산의 주체인 농민, 농민의 생산수단인 토지, 그리고 노동력과 생산수단이결합하여 이룬 성과로서 생산물을 날줄로 삼고, 그에 따른 부수 요인들을 씨줄로 삼아고찰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확인했다. 먼저 농가 구성과 농민의 비율에서대체로 80% 이상을 차지했다. 192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대체로 그 추세가 이어졌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초에 일시 그 비중이 작아진 적은 있으나 1970년대 승주군에서는 여전히 80%대였고, 1985년에 이르면 70%대로 감소 추세에 있었다. 둘째 농지소유 면에서 볼 때, 식민지 지주제 구조 속에서 1920~30년대에는 소작인이 60% 이상이었고, 농촌 중간층인 자작농과 자소작층이 약했다. 순천 지역에서는 지주-소작 관계가 특히 발달했다. 그 결과 압도적 다수에 달하는 순천 지역의 농민들이 농촌의 절대 권력자인 지주에 종속되어 있었다.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소작인이 사라지고, 자작농이 되었다. 그에 따라 지주는 농촌에서 권력을 잃었다. 또 농가 1호당 소유 면적이1950년대에는 소규모였으나 1970년대 이후부터 증가했다. 이농에 따라 농가 호수가감소하면서 평균 면적이 증가한 것이다. 셋째 생산성 면에서 살펴볼 때, 식민지 지주제 구조 속에서는 미곡과 면화 생산성이증대되었다. 조선을 식량과 원료 공급지로 삼고자 하는 산미증식계획과 ‘남면북양정책’ 의 결과이다. 이후 1975년 미곡 생산성은 1935년 평균 수확량에 비해 1.8배 남짓 증가했다. 미곡 자급 정책으로 미곡 증산을 독려한 결과 주로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 보급이확대된 데 따른 것이다. 증가 추세는 1985년까지 지속되었다. 경작 면적은 줄었지만, 생산량은 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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