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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서영석 (협성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교회사학회 한국교회사학회지 한국교회사학회지 제45호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255 - 289 (35page)
DOI
https://doi.org/10.22254/kchs.2016.4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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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특사 사건은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등의 특사를 파견하였던 사건이다. 당시 헤이그특사파견은 그 기획과 추진에 있어서 국제정세와 궁중의 상황으로 1년여가 넘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또한 특사 선정과 파견이 비밀리에 추진되었다. 따라서 그 역사적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의 연구와 진술을 토태로 종합하면 고종황제의 헤이그특사 파견은 물론 고종의 의지과 다각적인 대외외교 노력이 있었지만 이회영과 전덕기목사를 중심한상동파 민족지사들의 계획과 활동을 통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앞서 헤이그 특사준비와 파견에 있어서 상동청년회와 상동청년학원및 신민회의 조직과 이 조직에 속한 민족운동가들 즉, 상동파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헤이그 특사 파견에 있어서 상동교회는 헤이그특사사건의 온상이었으며, 헤이그특사 책략이 이회영과 전덕기를 비롯한 상동파 인사들을 중심으로 협의되어 고종에게 주청되었고 승인되었음을 밝혔다. 또한 상동파의 헤이그특사 파견 활동은 신민회의 활동 중의 하나였다. 그리하여 상동파의 특사파견 논의 과정, 고종황제에 대한 특사의 주청과승인, 특사 선정과 파견에 있어서 상동파 인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고종은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궁내의 인물, 시종 조남익과 조남승, 내시 안호형, 김상궁 등의 도움으로 상동파 인물과 연결되어 그 뜻을 전하고 위임장을 보낼 수 있었다. 이회영을 비롯한 상동파는 고종과 특사들을연결해주는 고리 역할을 하였다. 특사로 활약한 이상설과 이준은 이회영, 전덕기와 함께 수시로 상동교회에 모여 국사를 협의하던 상동파의 중심인물이었고, 이준은 1907 헤이그 특사 파견이 있던 해인 상동교회에 출석하며 청년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더욱이 블라디보스톡에서 밀사들의 활동을준비했다는 정순만은 상동청년회 서기였고 미국에서 윤병구와 송헌주를헤이그로 보낸 박용만 역시 상동청년회에서 정순만 바로 전에 서기로 활동하던 상동교인이었다. 이러한 준비와 상동파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핵심상동파들이 고종의 특사파견에 가담하여 힘을 모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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