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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성민 (대전대)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51집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361 - 398 (38page)
DOI
10.18496/kjhr.2015.08.5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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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고종은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이준?이위종 및 헐버트를 특사로 파견하였다. 이러한 고종의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한 일본은 평화회의 의장국인 러시아에게는 집요하게 한국의 참가 불허를 요구했다. 하지만, 고종의 특사 파견을 사전에 저지하려 하지도 않았고, 헤이그에서 한국특사단의 활동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제지를 하지 않고 방관하였다. 여기에는 2가지 중요한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한국의 만국평화회의 참가문제는 ‘한국병합’을 추진하고 있던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을 가할지도 모를 중대 사안이었다. 한국이 이 회의에 정식으로 참가하게 되면 그 자체로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조약은 死文化 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독립국으로 공인받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대표가 회의 참가를 허가받지 못할 경우 그 자체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권리를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공인받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일본은 포츠머드조약에 근거하여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하지만 이 조약에서 규정한 일본의 한국에 대한 ‘보호, 지도 및 감리’의 범위가 불분명했기 때문에 애초에 한국의 외교권 박탈의 근거로 이용되기에는 불충분했다. 한국의 평화회의 참가 문제는 이러한 일본의 고민을 열강들과의 특별한 협의과정 없이 해결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일본은 열강과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였다. 첫째 국제사회를 향해 일본은 한국특사단의 공개적인 반일활동을 허용할 정도로 한국에 대해 자유롭고 문명적인 지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도 다른 서구 열강과 동일하게 식민지를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둘째 이 사건을 빌미로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한층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의도는 제2회 만국평화회의 기간 동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일본은 열강으로부터 한국의 회의 참가 불허를 약속받음으로써 한국에 대한 보호권을 공인받았다. 그리고 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국의 내정권을 박탈한 제3차 한일협약(丁未條約)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헤이그 특사에 대한 일본의 사전 탐지
3. 헤이그에서 일본 전권위원단의 대응
4. 일본의 한국 지배권 강화
5. 결론
참고문헌
【日文초록】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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