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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노의찬 (동국대학교 사학과 박사수료)
저널정보
열상고전연구회 열상고전연구 열상고전연구 제54호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251 - 28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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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의 「頭流紀行錄」은 15세기 말의 두류산을 묘사하는 글로서 아주 소중한 기록이다. 이는 그 당시에 존재했던 두류산의 사찰들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하겠다. 실제로 유학자 김일손은 정여창과 장기간에 걸쳐서 산사를 답사하고 나서 두류산에 관련된 구체적이면서도 세부적 평가를 남긴 글에서 의미하는 바가 큰 내용들이라 이해된다. 김일손은 두류산의 산사를 여행하는 동안, 각 절들에 대한 기원에서부터 시작하여 흥망성쇠뿐 아니라, 사찰의 특징적인 요소 하나, 하나를 상세하게 보여 주었다. 더불어 그는 자기가 본 것들에 대하여 설명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의 평가가 연이여 나타나 김일손의 배불적 입지를 분명하게 내 비취며 서술하여 나갔다. 김일손은 함양에서 출발하여 마지막 佛日菴에 도착할 때까지 산사의 스님들과 전반적인 시간들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김일손은 불교와 관련된 내용에서는 유교적 가치관에 기인하여 불교비판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 구체적 내용을 보면, 斷俗寺에 있는 화상을 보고는 저속하고 비루하다 하여 회피해 돌아나갔으며, 고려조의 仁宗과 毅宗 부자에 대해서는, “禪佛에 지극정성을 다하였지만 인종은 이자겸에게 곤욕을 당하였고, 의종은 거제로 쫓겨 가는 액운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불교의 아첨으로 인한 국가의 무익함이 이와 같다”며 일침을 가하는 논평을 하였다. 한편으로는 “석가의 가르침이 서역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불교 받들기를 공자보다 심하며, 또한 사악함에 탐욕 되어서 정도를 독실하게 신봉하지 못 한다” 라며 그릇되고 부패된 불교에 대하여 비난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최치원이 지었다는 비문을 대할 때에, 김일손은 최치원이 만년에 불교에 귀의한 사실에 대하여 너무나 안타까워하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거나 찾아내려는 모습이 역력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김일손의 이러한 태도는 최치원의 흠집으로 남은 불교적 흔적들을 두둔하거나 대변하려는 유자로서의 배불적 성격을 선명하게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김일손의 「頭流紀行錄」은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데에 적지 않은 사실들을 전해주고 있다. 당시 김일손과 정여창을 포함한 여행객들은 두류산을 여행하는 동안 줄곤 산사에서 많은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으며, 그 사이에 불교의 이색적인 장면들도 쉽게 접 할 수 있었다. 김일손은 두류산을 여행하면서 잊을 수 없는 풍경들을 가슴속에 담아 두었지만, 불교나 토속적 신앙에 관해서는 퇴색되고 사악한 대상이라 꺼리거나 기피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두류산여행 전체에서, 김일손이 유학자로서의 견해와 입장 차이를 뚜렷하게 나타낼 뿐 아니라, 불교에 대한 그의 내면세계도 동시에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실제로 김일손은 유교 이외의 신앙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렸는지 그 당시의 유학자가 바라본 관점에서 생생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논평한 것에 대하여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반면에 15세기의 유학자들은『朝鮮王朝實錄』의 척불이나, 배불상소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분명한 비판의식과 동떨어지게 일상생활에서는 불교적 삶을 영위한 것이 보편적 모습이었다. 특히 성현이 남긴 『?齋叢話』에서는 인물, 역사, 문학, 제도, 풍속, 설화 등 조선전기의 실체적 삶들과 직결되는 기록들을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각 지방의 읍지에 연관된 내용들을 들여다보면 사족들은 집 근처에다 토굴이나, 분암을 두는 등 불교와 밀접한 생활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김일손의 「頭流紀行錄」은 조선이 지향한 성리학체제에서 강직한 유자의 일면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당시 사림 또는 지식인들의 위상이나 사회구조 하에서 어느 정도의 뚜렷한 차별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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