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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인호 (대구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84호
발행연도
2023.3
수록면
291 - 32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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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점촌은 조선시대까지 10여 호에 불과한 寒村이었다. 하지만 경북선이 개통되고 1924년 점촌역이 설치되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점촌역이 경북선 종점이 되며 인구가 증가하고 온갖 물건이 集散한다. 지역사회 내부에서 생활의 편의를 위해 시장의 건설과 기타 관공서의 이전을 요청하였으며 이러한 여론을 주도한 계층은 지역유지였다. 점촌의 유지들 중 일부는 경찰, 법률 관련 공무원 출신자였다. 이들은 운송업·생활 잡화 판매점·주조업에 종사하였고 여러 조합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경제력과 인망을 얻었다. 또한 점촌역 설치 전후에 외부에서 들어온 인물이 많았다. 다만 이상한 점은 점촌역의 설치이다. 원래 경북선의 종점은 함창역이었으나 갑자기 점촌역으로 변경되었는데 함창역과 점촌역의 거리는 불과 약 4k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계획의 변경은 문경의 다양한 자원을 착취하기 위한 일제의 식민지 계획과 지역의 발전을 기대하는 점촌 유지들의 활동 때문이었다. 점촌 유지들은 점촌번영회를 조직하였는데 이 번영회에는 산업가 외에도 문경군수 등 공무원들도 참여하였다. 또한 영향력을 가진 일본인 산업가도 문경에 살고 있었다.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지역 주민들의 이익이 일치하여 점촌의 경제는 양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상당수 자본을 일본인이나 일본과 관련된 인물들이 차지하였으며 대다수의 소작농들은 경제적으로 몰락하였다. 문경군민들의 빚은 증가하고 사회적 분위기는 각박해졌다. 일본인과 조선인 간의 대립이 격화되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1928년 예천까지 경북선이 연장되어 점촌역의 경제는 다시 약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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