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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미라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제25집 제3호(통권 제51호)
발행연도
2024.12
수록면
87 - 109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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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적으로 북송 초기는 科擧制의 試題로써 문인들에게 律賦 창작이 보편화되었던 시기이다. 즉, 율부는 당시의 정치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겠다. 하지만 율부는 창작 상 지나친 형식적 구속과 내용의 난해함으로 인해 점점 여러 가지 폐단이 고착화되었다. 그리하여 歐陽修를 중심으로 하여 많은 문인들이 이것에 반대하여 고문을 제창하였고, 또 ‘文賦’라는 새로운 장르가 등장하게 되었다. 율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체이지만 현전하는 작품이 의외로 드물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율부에 관한 연구가 의외로 많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송대 시문혁신운동으로 과거의 시제가 전환되기 이전 시기에 주로 창작된 율부는 가치가 있다 하겠다. 북송 초기 율부로 이름을 날렸던 문인으로 田錫과 王禹偁이 있다. 왕우칭은 북송 초기 고문가로서 구양수가 주도한 송대 시문혁신 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북송 초기 통치자들은 정치적으로는 유가를 지향하였으나 개인적으로는 黃老 思想에 심취하여 이것을 과거제에 활용하는 모순적인 면이 있었다. 이 시기를 살았던 왕우칭 또한 이런 시기의 풍조에 발맞춰 여러 율부 작품을 창작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율부 작품을 대부분 태워 버리고 일부만 남겨두었다. 특히 그는 평소 유가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강한 정치적, 역사적 면모를 나타냈는데, 폄적 이후 일부 작품에서는 자연과 함께 하고자 하는 도가적인 면모도 나타난다. 그의 많지 않은 율부 작품 중 『莊子』를 제재로 하고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서 왕우칭의 실제 창작과 사상을 좀 더 고찰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북송 초기 사회적 배경과 문학적으로 그동안 의외로 다루지 않았던 율부에 대한 이해를 시도해보고자 한다.

목차

국문초록
1. 들어가며
2. 北宋 初期 律賦 創作과 王禹偁의 辭賦觀
3. 王禹偁의 律賦에서 『莊子』 제재 차용 양상 및 그 배경
4. 나오며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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