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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동학학회 동학연구 동학연구 제19집
발행연도
2005.9
수록면
1 - 40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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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明世子(翼宗)의 代理聽政(l827.2.18~1831.5.6)은 국왕 순조가 안동김씨 세도정권의 울타리를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고 국정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단행한 비상의 조처였다. 순조는 대청 초 효영세자에게 국왕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과 사법권의 일부까지 이양하여 대청에 힘을 실어주면서 전폭적으로 지지하였다. 이에 정조와 정조대의 정치를 이상으로 삼았던 효명세자는 戚族政治에 비판적인 淸流勢力을 규합하여 지지기반드로 삼은 가운데, 右文 政治와 爲民政治를 표방하며 왕권강화와 민생안정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즉, 효명세자의 대청은 차기 군주로서의 'Intern-ship'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순조는 이러한 효명세자의 대청에 맞추어 劉本製로 하여금 正祖대 이래의 숙원사업이었던 『日省錄凡例』를 완성토록 하여 『日省錄』 편찬의 진일보를 이루었고, 효명세자의 대청사실 또한 당대인들에 의해 『實錄』을 대체하는 國史서술 체제로 인식되던 『일성록』과 동일한 체제로 서술토록 하였다. 즉, 『翼宗代聽時日錄』의 편찬은 국왕권에 버금가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며 국정을 주도하였던 효영세자의 대청사실을, '國史' 수준으로 서술하여 대청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고자 했던 순조와 효명세자의 소망의 산물이었다.
정조와 그의 개혁정치를 이상으로 했던 효명세자는 20대 초반의 예비 군주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성실하고 과감하게 대청을 추진해 나갔으므로, 효명세자는 父王 순조의 절대적 희망이었다. 그러나 예기치 못했던 효명세자의 急逝는 순조의 개혁의지를 꺾어버린 좌절이었고, 효명세자의 대청을 계기로 결집되었던 反戚族的인 비판세력의 정치적 좌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전반기 이른바 勢道政治期에 소수의 외척벌열에 집중되었던 권력을 해체하여 왕권을 강화함으로써 정치적 일신을 도모했던 순조의 '중세적 정치개학'은, 이후 헌종·철종대까지 지속된 안동김씨 세도정권 하에서 정치적 주류가 되지 못했고, 이는 大院君의 집권을 통하여 다시 시도되기에 이른다.

목차

한글 논문개요
영문 논문개요
Ⅰ. 緖論
Ⅱ. 『翼宗代聽時日錄』의 편찬 배경
Ⅲ.『翼宗代聽時日錄』의 내용과 정치사적 의의
Ⅳ. 結論
참고문헌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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