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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태년 (인하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구 정신문화연구) 정신문화연구 2009 가을호 제32권 제3호 (통권 116호)
발행연도
2009.9
수록면
29 - 5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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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夷狄)’이 ‘중화(中華)’의 주인이 되는” 명ㆍ청 교체를 겪으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북벌(北伐)’과 ‘북학(北學)’ 사이에서 고민했다. 본고는 비슷한 시기 북벌과 북학을 각각 주창했던 한원진(韓元震, 南塘, 1682~1751)과 홍대용(洪大容, 湛軒, 1731~1783)의 정학이단론을 살펴봄으로써 양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해보고자 하는 글이다.
그들은 ‘주자학자’와 ‘실학자’, ‘북벌론자’와 ‘북학자’로 판연히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학자들이지만, 양자는 모두 주자학을 정학으로 여기고 있었고, 불교ㆍ도교ㆍ양명학 등을 이단으로 판정하고 그들을 비판하였으며, 양자 모두 주자학의 이기심성론과 수양론에 기반을 두고 비판을 진행했다. 다른 것은 비판의 태도였다. 한원진은 동문이었던 이간(李柬)에게조차 이단의 경향이 보인다며 엄정하게 비판의 잣대를 들이댄 데 비해, 홍대용은 중국에서 만난 학자들에게도 포용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들이 비록 변발을 하고 양명학과 불교에 경도되어 있었지만, 그들을 진리를 추구하는 동학으로, 같은 문명인으로 대했던 것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차이는 그들의 현실에 대한 인식에 기인한 것이었다. 한원진은 민심을 수습하고 청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외부적으로 ‘오랑캐 무찌르기’를 주장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이단 물리치기’와 ‘소인배 척결하기’를 추진하면서 그를 통해 중화가 재건되고 정학이 바로 서며 군자들이 정치를 주도하기를 소망했다. 반면에 홍대용은 청은 성공적으로 제국을 정비해 나아가는데 비해 조선은 여전히 이기심성론을 기준으로 편을 가르고 주자학에 대한 지식으로 등급을 매기며 ‘사문난적(斯文亂賊)’ 시비와 ‘충역(忠逆)’ 논쟁을 벌이고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의 이런 지적 상황에 염증을 느끼다가 연행을 통해 타국의 지식인들을 만났고, 그들과 대화하면서 상대의 처지를 인정하고 보편적 진리를 논하였다. 이들은 이렇듯 정학의 내용에 대해서는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타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고, 이러한 차이가 바로 ‘북벌’과 ‘북학’의 다른 노선으로 이어졌다.

목차

Ⅰ. 서론
Ⅱ. 학문관
Ⅲ. 이단 비판
Ⅳ. 현실 인식과 비판의 자세
Ⅴ. 결론
참고문헌
국문요약
English Abstracts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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