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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용서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57輯
발행연도
2015.8
수록면
225 - 26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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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931~1935년에 개벽사에서 발행한 잡지(어린이, 별건곤, 신여성, 혜성, 제일선)의 편집자들이 누구였는가를 확인한 연구이다. 『신여성』은 1931년 1월 재발행되었고, 『혜성』은 3월 창간되었다. 『신여성』은 방정환 최영주 송계월이 편집하였다. 『어린이』는 이정호, 『혜성』과 『별건곤』은 채만식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다.
1931년 7월 방정환이 사망하자 개벽사 업무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차상찬은 방정환을 대신하여 개벽사 업무를 총괄하게 되었으며, 자신이 이미맡고 있던 『별건곤』과 『혜성』의 편집 겸 발행인 외에 『신여성』의 편집 겸 발행인을 추가로 맡았다. 이정호는 『어린이』의 편집 겸 발행인이 되었고, 신영철은 편집국장이 되었다. 반면 최영주와 채만식은 개벽사를 그만 두었다.
이런 변동 속에서 『신여성』은 이정호와 송계월, 『어린이』는 신영철, 『혜성』과 『별건곤』은 차상찬과 김규택이 편집을 맡았다. 1932년 5월부터 『혜성』을 『제일선』으로 바꾸고, 다시 입사한 채만식이 편집을 맡았다. 9월에는 최영주가 돌아와 『어린이』를 맡았고, 신영철은 『별건곤』을 편집하였다. 『제일선』은 1933년 3월호를 끝으로 더 이상 발행되지 못하였다.
1933년 6월호부터 최영주가 『신여성』, 윤석중이 『어린이』 편집을 맡았다. 이정호는 1933년 12월호부터 『별건곤』을 편집하였다. 개벽사의 잡지 발행은 1933년 하반기부터 점차 위축되고 사원들이 속속 퇴사하는 등 쇠퇴의 길을 걸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개벽사의 잡지 발간 활성화 시기(1931~1933년)
Ⅲ. 개벽사의 잡지 발간 위축·쇠퇴기(1933~1935년)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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