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광자 (숭실대)
저널정보
한국인문사회과학회 현상과인식 현상과인식 2015 겨울호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17 - 37 (2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유교주의와 식민주의에 맞서 투쟁한 기독교 여성 지도자 김 마리아의 삶과 사상을 다루는 것이다. 김 윤방과 김 몽은의 셋째 딸로 태어난 김 마리아는 이 땅 최초의 교회로 알려진 소래교회 교인으로서 일찍이 기독교를 수용한 부모 덕분에 진취적인 가정 분위기를 맛보며 자라날 수 있었다. 당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유교주의에 맞선다는 뜻이었기에 김 윤방은 딸들에게도 남자와똑같은 인간임을 주지시켰다. 이는 여자에게 공적 교육조차 허용하지 않던 유교적 가르침에 저항하는 혁명적인 사고였다.
이러한 부모의 평등 교육에 힘입어 김 마리아 역시 여학생들을 가르칠 때 남성과의 평등을 강조했다. 사실상 그녀에게 교육은 유교주의를 내면화한 여성들을 해방시키는 수단이었으며,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된 조선을 구원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그녀 자신이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점이 무엇보다 돋보인다. 기독교 여성 지도자로서 자아실현에 성공한 이들이 친일파로 변절한 경우가 많았던 데 반해, 김 마리아는 3·1운동 이후에도 지치지 않고 ‘대한민국애국부인회’같은 항일단체 활동을 지속하였다.
삶 전체를 통틀어 김 마리아는 기독교 신앙과 사회정의 사이의 연관성을 온 몸으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에게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예수처럼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에 이 논문은 오늘날 기독교 여성들이 김 마리아의 삶과 사상을 통해 잠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는 제안으로 글을 맺는다.

목차

1. 들어가며
2. 출생 그리고 기독교와의 만남
2. 여성 교육과 계몽에 힘쓰다
4. 항일구국운동에 목숨을 바치다
5. 나가는 말
도움 받은 글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330-002451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