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진훈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62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7 - 38 (3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사람이 사망하면 장례 절차가 시작된다. 장례 절차의 첫 번째는 發喪을 하여 친인의 죽음을 알리고, 이어서 빈소를 마련하여 친인의 시신을 안치하는 것이었다. 고려시대 관인 및 그의 가족의 경우, 빈소는 친인이 사망한 당일 설치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무신정변이 발생하기 이전, 고려의 관인 및 그의 가족들이 사망하면, 사망한 장소와 상관 없이 빈소는 사찰에 마련되었다. 무신집권기에는, 고려전기와 마찬가지로 사찰에 빈소를 마련하는 풍습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세속적 장소인 亡者의 집에 빈소를 마련하는 새로운 경향이 등장하였으며, 이러한 새로운 경향은 급속도로 확대되어 구체적인 빈소 장소가 확인되는 인물 중의 절반 정도가 집에 빈소를 마련하였다. 원 간섭기에는 사찰에 빈소를 마련하는 풍습은 소멸되고, 관인 및 그의 가족들이 사망하였을 때 집에 빈소를 마련하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이처럼 무신집권기에 사찰 대신 집에 빈소를 마련하는 풍습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불교식 장례는 비용이 많이 들었으므로 경제적인 면 때문에 집에 빈소를 마련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관료층이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는 계층이라는 점에서, 이 점만으로는 이러한 변화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두 번째로 유교적 생활양식을 보급하려고 꾸준히 노력한 고려 정부와 유학자들의 노력을 들 수 있다. 세 번째로 무신정변으로 사찰이 커다란 피해를 입었고, 그 이후에도 사찰과 무신정권이 지속적으로 갈등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 사찰에 빈소를 마련하는 풍습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최충헌의 불교탄압과 거란 및 몽골과의 전쟁이 사찰에 빈소를 마련하는 풍습에 결정적인 타격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국문초록〉
1. 서론
2. 親人의 사망과 빈소 설치
3. 빈소 설치 장소의 시기별 양상
4. 빈소 설치장소의 변화 시기와 변화 이유
5.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55)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911-002639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