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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개번 맥코맥 (호주국립대학) 다무라 후미노리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아시아리뷰 아시아리뷰 제5권 제2호(통권 제10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233 - 258 (26page)
DOI
10.24987/SNUACAR.2016.02.5.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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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동중국해를 둘러싼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이 글은 오키나와(沖繩)를 중심으로 400여 년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오키나와 문제’는 미·일 정부가 미 해병대용 새로운 시설을 오키나와 본도 북부에 건설할 것을 완강히 요구하는데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배후에는 과거의 압박과 착취가 깊게 각인된 역사가 숨어 있다. 14세기 후반부터 류큐(琉毬)는 사실상 독립해 있었으나, 17세기 류큐가 정복당하면서 류큐 국왕은 에도(江戶) 막부와 베이징의 황제를 동시에 섬기게 되었다. 19세기 초,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는 류큐 왕국을 폐하여 류큐 번이라 하고, 메이지 정부는 신정권이 안정되자마자 본격적으로 류큐를 일본에 병합하기로 결의했다. 뒤늦게 일본의 일부가 된 오키나와 주민은 ‘일본인’이 되기 위해 오키나와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정하고, 오키나와·류큐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버리도록 강요받았다.
1945년 괴멸적인 오키나와전 이후 1947년 5월, 천황이 오키나와를 본토에서 떼어내어 장기간 미군 점령을 희망했다. 일본에서 분할되어 미군 사정권 아래에서 ‘전시국가’가 된 오키나와는 일본으로 반환되면 미군에서 해방되고 일본 헌법 아래 비군사적이며 평화로운 섬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일본 복귀를 희망했다. 결국 1972년 시정권이 미군에서 일본으로 이관되었으나 일본 정부는 거액의 비용을 미국에 지불하는 한편, 미군기지 반환을 바라지 않았다. ‘반환’으로부터 약 20년 후, 냉전체제는 종결되었으나 기지는 여전히 남아 있고, 더 나아가 미·일 정부는 기지를 더욱 증강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오키나와 주민을 또 다시 크게 낙담하게 만들었다. 오키나와는 지리적 특성에 따라 급속히 변모하고 있는 동아시아, 동북아시아 공동체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헤노코(辺野古) 기지 반대운동을 통해 폭력과 강제로 점철된 400년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평화적 수단으로 평화로운 섬을 회복하는 시민의 이야기가 지금 완성되어 가고 있다.

목차

I. 들어가며
II. 조공국 / 극장국가
III. 격동의 19세기
IV. 청·일 · 오키나와 분할안
V. 할양되고 버림받는 오키나와: 1945~1952년
VI. 일본 복귀가 아닌 오키나와 반환: 1972년
VII. 냉전 후
VIII. 맺는말: 전망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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