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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성우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57집
발행연도
2017.2
수록면
85 - 11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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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鎭弘은 1895년 경북 칠곡군 인동에서 태어났으며, 1927년 10월 18일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의거를 거행했다. 그가 민족운동의 길로 나서게 된 것은 고향 인동에 설립된 仁明學校에 수학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인명학교에서 동지 李乃成을 만났고 교사로 근무하던 스승 張志必을 만나 항일의식을 형성했다. 장지필은 경북 고령의 乃山書堂에서 수학하며 李斗勳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두훈은 寒洲 李震相의 제자로 대표적인 한주학파였으며, 그의 가르침을 받은 장지필도 寒洲學脈을 계승하고 있었다. 장지필과 장진홍이 한주학파 문인들과 독립운동을 함께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장진홍은 인명학교에서 수학한 후 1914년 조선보병대에 입대해 근무했으며, 조선보병대를 마친후 만주로 건너갔다. 그는 1918년 중국 봉천에서 이내성의 소개로 金正默·李國弼을 만나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한 후 러시아 하바로브스크에서 군대양성에 주력했다. 그러나 러시아 백군과 적군의 전투가 격렬해지자 국내로 돌아왔다. 그는 국내로 돌아온 후 3·1운동 과정에서 일제
가 자행한 만행을 조사해 세계 각국에 배포하는 일을 추진했다. 장진홍은 1927년 10월 18일 벌꿀상자로 위장한 폭탄을 전달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를 단행했다. 그는 의거직후 일제경찰의 추적을 피해 경북 선산과 안동·영천일대에서 은신하면서 또다시 영천경찰서 폭파를 준비했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장진홍은 일제의 수사망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은신하던 중 체포되었으며, 1930년 7월 31일 옥중에서 자결 순국했다.
장진홍 의거는 1920년대 후반 경북지역에서 전개된 대표적인 의열투쟁이었다. 일제는 장진홍 의거의 배후를 파악하지 못했고 단독의거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장진홍 의거는 1920년대 경북지역의 독립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특히 金昌淑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제2차 유림단 의거와 국민당과 북경한교동지회, 다물단 등 해외독립운동단체와 유기적으로 연계된 의거였다. 이러한 성격은 장진홍의 스승인 장지필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장진홍과 이내성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의거를 계획한 것은 1926년이다. 당시 장진홍과 이내성의 활동은 장지필과 김정묵, 그리고 이들과 연계된 김창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장지필과 김정묵은 상해에서 김창숙과 함께 활동을 벌였고, 그가 주도한 제2차 유림단 의거 당시 국내에서 활동했다. 김창숙과 장지필, 김정묵은 모두 한주학파로 의열단과 관계가 있었다. 이를 통해 보면 장진홍 의거는 단독의거가 아니라 장지필·김정묵·김창숙과 관계 속에서 전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김창숙이 국내에서 자금을 모집하던 시점에 대구에서는 李定基가 비밀단체 암살단을 조직했다. 이정기도 한주학맥을 계승하고 있었다. 그는 1925년 1월 북경에서 南亨祐·金昌淑·裵天澤과 만나 자금모집과 파괴·암살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단체 조직을 협의했다. 그는 1925년 9월 남형우와 배천택으로부터 무기제조법을 습득하고 권총 2정과 탄환을 받아 귀국한 후 대구를 중심으로 ‘암살단’을 조직했다. 그런데 김창숙·남형우·배천택은 1923년 3월과 1924년 8월 북경에서 조직된 국민당, 북경한교동지회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벌였으며, 1925년 4월 북경에서 조직된 多勿團의 핵심인물이었다. 이정기가 1925년 9월 귀국해 암살단을 조직했다면 그가 조직한 암살단은 다물단의 국내조직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김창숙의 자금모집에 암살단원들이 참여했고, 장진홍도 이에 참여했다고 보아야 한다. 김정묵과 함께 북경한교동지회에서 활동했던 장택원이 장진홍과 함께 의거를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장진홍 의거는 단독의거가 아니라 1920년대 경북지역 독립운동, 한주학파의 독립운동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목차

1. 머리말
2. 항일의식의 형성과 의거 이전의 활동
3. 의거의 배경과 전개과정
4.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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