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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창섭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67호
발행연도
2018.5
수록면
313 - 361 (49page)
DOI
10.15299/jk.2018.05.67.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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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미군정시기 농사교도사업과 농사개량원에 대한 연구를 통해 현대 남한의 농무행정의 연원이 미군정기의 농업정책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밝혔다. 미군정은 38선 이남을 통치하면서 변혁세력의 공세에 대응하여 미군정 주도의 ‘농지개혁’과 함께 생산력 확보를 위해 미국에서 시행되던 농사교도사업을 남한 사회에 이식하고자 하였다. 그에 따라 농업기술교육령이 제정되고 농사개량원이 발족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농무행정의 개혁을 염원하던 남한 사회의 진보적 농업전문가들의 지지가 뒷받침되어 이뤄진 것이었다. 따라서 농사개량원의 운영 및 활동은 식민지시기의 관료 중심적 농정을 극복하고 ‘농무행정의 민주화’를 일궈내어 토지분배에 부응할 수 있는 생산성 확보를 그 목표로 하였다. 하지만 당시 해방정국의 정세 구도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목표는 파탄으로 귀결되었다. 단선단정을 획책하던 분단세력은 대항 세력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농촌사회와 농민을 수직적으로 재편해야 했고, 미군정 역시 반공기지 수립이 농촌재건을 우선했기 때문에 신설 교도기구는 정치적 동원 기구적 속성까지 함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농사개량원은 반식민지적 개혁의 소산으로 등장하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식민지적 농정의 흐름까지 응결된 것이다. 이승만 정부의 등장으로 농사개량원은 자율성은 급속하게 쇠퇴하고 관료성이 강화되었다. 이와 같은 양상은 교도기구의 인적 구성과 협동조합 설립 저지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결국 농사개량원은 비민주적 속성이 일반화되면서 농업기술원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해방 이후 관료 중심적 농정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농촌새마을운동은 미군정기 교도기구인 농사개량원의 역사적 경험을 승계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바, 환언하면 농촌진흥운동의 연장선이자 농촌새마을운동의 전사가 바로 농사개량원이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농사개량원 설립 배경
3. 농사개량원의 활동과 한계
4. 농사개량원의 농업기술원 전환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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