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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송순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37호
발행연도
2020.3
수록면
421 - 468 (48page)
DOI
10.31218/TRKH.2020.03.137.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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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미군정기 농업 기술행정 기구와 조직, 이에 참여한 한국인 관료들의 갈등과 순응과정을 살펴보았다. 미군정은 조선총독부 농업시험장 체제를 인수하여 농업기술 연구를 진행하고자 했으나 시험장의 직급을 급격히 격하시켜 시험장 직원 및 관리자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1947년 12월 농사개량원의 설립은 일제 식민농정의 하향식 관치주의 를 탈피하고자 농무부에서 분리시켜 농업생산력 증가를 위한 연구․교육사업과 민주적 농민지도 사업을 추진하려는 구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제도적 한계와 정치 상황의 변화로 지속되지 못했다. 일제 관변농민단체였던 조선농회도 민주적 농민단체로의 전환을 추진했지만, 오히려 관제성이 강화되면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미군정기 남한의 농무행정 최고 담당자는 이훈구였다. 초대 농산국장 현근도 미국 유학파였다. 이훈구 - 현근 라인은 미국의 대한정책에 입각하여 자본주의국가 건설에 걸맞는 농무행정을 지향하면서 전체주의적 관치행정을 탈피해 ‘민주적’ 농무행정을 구현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해방 이후 일본인 관리 중심의 구조였던 식민지 행정체계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농사시험장 초대 장장인 계응상은 한국인 관리의 자부심과 실무적 능력 배양을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으나 미군정과의 소통 부재와 불화로 6개월여 만에 해임되었다. 후임자 김호직은 미군정에 대한 협력과 순응의 태도를 보였으나 농사 시험장은 침체되었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미군정기 한국 농업 기술기구의 변천과 특성
Ⅱ. 미군정기 한국 농업 기술관료의 활동과 갈등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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