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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39호
발행연도
2007.1
수록면
1 - 50 (5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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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후기 밀양 지역사회는 농민항쟁, 삼별초 항쟁, 원 종속구조 하 경제적 수탈 등 중앙정부와의 갈등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울러 왜구의 침탈은 밀양 지역의 경제기반을 붕괴시키면서 지역사회 전체를 동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여말선초 수리시설의 복구와 개발, 농서의 보급 등 농업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지방개발이 확산되고 지방사회의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밀양 지역사회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조선초 밀양도호부는 고려시대처럼 많은 속읍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수산현과 풍각현을 여전히 속읍으로 하면서 1개의 향과 3개의 부곡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밀양 지역사회는 이같은 영역을 확보하면서 당시 전국의 추세에 따라 부내부동부서부남부북의 5개 방위면체계로 하부 행정조직을 구성하고 있었다. 각 방위면 소속 리의 존재는 조선중기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밀양지 각리조에 소개된 163개의 리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면 조선전기의 그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조선전기 밀양지역 각 면의 인구수를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1789년의 호구총수 자료를 바탕으로 호구의 증감율을 감안하여 환산해낼 수 있었다. 밀양 지역의 인구증가는 조선후기보다 조선전기에 급격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면별 인구규모는 부동면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인구 조밀도에 있어서는 부내면이 월등히 높다. 그것은 이 면이 읍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서 관아나 각종 시설이 밀집해 있고 상주 인구 또한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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