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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19호
발행연도
2005.1
수록면
1 - 39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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后山 許愈(1833-1904)를 배출한 三嘉縣의 金海許氏 가문은 경상우도에서 문호를 유지해 왔다. 고려말기 許麒에 의해서 固城에 정착하여 金海許氏 가문을 형성하였다. 다시 허기의 현손 竹溪 許珣이 三嘉縣 佳會里 德村에 移居하였다. 본래는 무관의 가문이었으나 竹溪의 아들 晩軒 許彭齡이 南冥 문하에 나아가 공부함으로 인하여 武業을 버리고 儒學으로 전환하게 되었다.晩軒은 南冥을 享祀하는 晦山書院 창건을 주도하였고, 창건 이후에 회산서원에 매달 초하루 焚香할 정도로 남명에 대한 존모의 정도가 지극하여 유가로서의 기반을 확실히 잡았다. 그의 두 아들은 倡義하여 忘憂堂 郭再祐 휘하에서 군공을 세웠고, 또 형제 둘 다 문집을 남겼으니, 유학에 조예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그 아들 滄洲 許燉 대에 와서, 문과에 급제하여 文名을 날리고, 대북정권에 협조하지 않는 절조를 지켰으므로 家數를 크게 제고시켰다. 이후 강우의 비중 있는 가문이 되었다.滄洲의 손자 臥龍亭 許鎬는 굉장한 경륜을 가져 북벌을 담당할 將臣에게 세 가지 계책을 제시할 정도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신실한 선비로서 처신하였는데, 주로 江左의 학자들과 교류가 깊었다.晦山書院 창건을 주도할 정도로 南冥을 존숭하는 가문이면서 아울러 退溪도 존숭하여, 두 대학자의 장점을 융합하여 발전시키려는 가문의 전통적 학풍을 갖고 있었다. 아울러 倡義를 하는 등 우국연민의 구세정신도 여타 가문보다도 더 강렬하였다.이런 전통은 后山에게까지 면면히 이어져, 雷龍亭을 중건하는 일을 주관하고 뇌룡정의 강학을 주도하고 神明舍銘或問이라는 神明舍銘에 대한 역사상 가장 상세한 주석을 달면서도, 퇴계의 학문을 존숭하여 聖學十圖附錄이라는 聖學十圖에 대한 精深한 주석서를 내고 있다. 남명과 퇴계를 대립적인 구도로 파악하지 말고, 후학들이 두 대학자의 좋은 점을 상보적으로 배운다면, 국가민족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후산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학문은 늘 구세정신이 있어야 그 존재가치가 있다는 문학관을 갖고서, 문장을 지을 때도 世敎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지을 필요가 없다고 후산은 생각했다.후산은 남명퇴계 우리나라 양대 학자의 학문을 조화롭게 아우른 家學의 바탕 위에서, 寒洲에게 나아가 心卽理說을 배워 계승하여, 19세기 강우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대학자로 성장하여 많은 제자들을 길렀으며 강우의 학문이 부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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