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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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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학학회 동학학보 동학학보 제35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73 - 30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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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영호남의 지리산권에서 일어났던 갑오년의 동학농민혁명에 당대 조선 민중의 꿈과 열망이 어떠한 이상사회의 비전으로 투영되었는가를 규명해 보려는 데 있다. 주지하다시피 당시의 조선은 매관매직의 악폐로 드러난 관료기강의 문란과 봉건관료층의 가혹한 수탈이 초래한 민생의 파탄이 극에 달한 상황이었고,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뒤부터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탈도 점점 노골화되던 총체적 난맥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이러한 난맥이 배경이 되어 발생한 반제ㆍ반봉건 변혁운동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동학농민혁명 내에서도 지리산권의 위상은 특기할 만한 데가 있었다. 예컨대 동학의 포덕이 본격화되기 전, 자신을 수상히 여기던 관의 지목을 피해 고향땅 경주를 떠난 최제우에게 최초로 궁벽한 은둔의 장소를 제공한 곳은 남원의 교룡산에 있는 은적암(隱蹟菴)이었다. 그는 1861년 11월부터 1862년 3월까지 그곳에서 「論學文」, 「修德文」, 「敎訓歌」, 「劍歌」, 「道修詞」, 「安心歌」, 「勸學歌」 등의 저작을 완성하며 동학의 이념과 교리를 체계화하는 한편 동학의 전국적 포덕을 위한 지역적 초석을 착실히 다져 나갔다. 김개남이 이끈 제2차 동학농민혁명이 남원지역에서 발화하여 전국으로 봉기가 확산되는 출발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사상의 산실 및 포덕의 중심지로서 남원지역이 수행했던 역사적 역할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리산권의 일부분인 남원지역의 그와 같은 위상만 보더라도 우리는 지리산권이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의 확산에 미친 상당한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지리산권은 가히 동학사상의 진원지이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씨앗이 발아된 곳이라고 할 만한 역사적 중요 지역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실패로 끝난 이 혁명으로 지리산권을 비롯한 조선 강토의 곳곳에는 숱한 선혈이 뿌려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혁명의 대가로 뿌려진 이 선혈의 의의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당대의 민중은 도대체 무엇을 얻고자 그처럼 참혹히 피 흘리는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일까? 논자는 동학 특유의 교리적 요소 중 하나인 시천주(侍天主) 사상의 의의를 규명함으로써 그 물음에 대답하려고 했다. 논자의 주요 논지는 만인의 내면에 한울이 모셔져 있다고 하는 동학의 시천주 교리가 만민평등의 정치철학으로 재해석되면서 이상적 평등사회를 열망하며 무기를 잡아 든 농민군의 투쟁에 이념적 동력을 제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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