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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51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91 - 31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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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순은 안동 김문 출신으로 순조 원년(1801년) 신유사옥으로 처형된 인물이다. 안동 김문은 병자호란이 발생했을 때 김상헌과 김상용의 충절을 바탕으로 의리와 학문을 갖춘 조선후기 최고의 명문가이며, 김건순은 김상헌의 봉사손이었다. 안동 김문은 19세기에는 왕실과 국혼을 통해 외척가문으로 가세를 지속하였던 노론 가문이다. 김건순은 안동 김문 가풍에서 나오는 자유롭고 다양한 분위기와 개인의 재능과 호기심, 다양한 관심이 작용하여 그는 학문으로서 서학을 하였다. 또한 그는 청년시절부터 천주교 서적을 읽고 책을 썼으며, 천주교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건순은 정조대 ‘강이천 사건’에 연루되었지만, 산림 김양행의 손자이며, 김상헌의 봉사손이라는 가문적 배경, 그리고 정조의 안동 김문에 대한 신뢰 등으로 혼자 귀양에서 제외된바 있다. 순조 즉위후 정순왕후가 집권하면서 상당수 천주교 신자들이었던 남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 신유사옥이었다. 이 사건으로 정조대 입지가 강화되었던 남인들은 정치적으로 제거될 수밖에 없었다. 김건순은 주문모 신부의 심문 과정에서 언급되며 체포되어 천주교 신자인지, 세례를 받았는지, 강이천이 꾀한바 있는 사건을 통해 반역을 꾀했는지 집중 심문을 받았다. 김건순은 철저히 천주교인인 것을 부정하였고, 세례 받은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주문모신부만 만난 것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배교로 볼 수 있고, 천주교회에서도 김건순을 순교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김건순은 안동 김문 명문세족 출신 양반사대부이지만 참수형을 당하였다. 김건순은 천주교를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샤를르 달레나 황사영 등 당대인들은 그를 순교자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김건순에 대한 엄한 처분은 두 가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하나는 안동 김문에 대한 정순왕후의 견제이며, 또 하나는 신유사옥이 남인을 처벌하는 정치적 숙청이라는 시각에 대한 반증으로 노론 김건순에 대한 엄한 처벌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천주교 측에서는 노론도 천주교 신자라는 또 다른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에 당대에는 김건순을 순교자로 인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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