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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78호
발행연도
2020.2
수록면
109 - 151 (43page)
DOI
10.21490/jskh.2020.02.7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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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 이후 정국의 추이는 폐주 광해군을 반정이 일어난 주요 원인으로 설정하고 인조에게 모범적인 군주상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인조에게 이러한 과제는 왕권을 정치적으로 제한시키는 장치가 되었다. 반정 이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림의 폭넓은 지지가 필요했고, 그 때문에 공론의 영향력이 전에 없이 커진 것이었다. 인조는 박정 등의 남이공 탄핵 사건을 계기로 이러한 틀을 전환시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종친들의 호의를 얻을 수 있었던 인성군 문제나 인조의 정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사친 제례에서 인조는 여전히 영향력을 가질 수가 없었다.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인조의 의지를 실제 정책으로 실행시켜 줄 친위 세력과, 신하들을 순응하게 할 수 있는 권위가 인조에게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인조는 사친을 위한 추숭을 진행하면서, 친위 세력의 재편도 시도하였다. 인조는 이귀, 최명길의 계책과 조력에 힘입어 사친 추숭과 종묘 입묘를 마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인조는 비공신계 인물을 친위 세력으로 들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왕권을 지탱해 주는 다른 한 축이었던 김류 세력이 없이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다. 인조는 後金의 건원 칭제 이후 대신들에게 삼사를 견제하게 하는 시기에, 김류를 대신에 복귀시킬 수 있었다. 인조는 최명길을 비롯한 추숭 지지세력이 전란을 저지하는 외교적 대책 마련에 참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김류 세력과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반정직후 정치질서의 변동과 갈등
3. 인조의 정국 주도 노력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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