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윤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48집
발행연도
2022.7
수록면
149 - 185 (3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세자의 생모지만 죄인이라는 장희빈의 이중적 위상은 그녀의 사후 상례와 추보 의례에서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장희빈의 상례는 예장으로 거행되었지만, ‘희빈’이라는 작호 대신 ‘장씨’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상례는 궐밖의 본궁에서 거행되었고, 세자와 세자빈은 궐내의 별당에서 거애의<SUB>擧哀儀</SUB>. 성복의<SUB>成服儀</SUB>, 제복의<SUB>除服儀</SUB>를 행했다. 세자는 첩모복으로 시마복을 입었지만 일만에 공제해야 했다. 발인 전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빈소에 친림하여 곡하는 것으로 사정<SUB>私情</SUB>을 펼 수 있었다. 이후 발인과 하관 시 별당에서 망곡하는 절차를 끝으로 모든 의례가 마무리되었다. 세자의 의례는 매우 제한적이었지만, 장희빈 장지의 선택은 세자의 안위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었다. 택지가 번복되면서 3개월 규정을 넘겨 4개월째 장례를 치렀고, 이후 길지를 찾기 위해 천장이 거행될 만큼 장희빈의 묘소는 국가적 관심사가 되었다.
1721년 신축옥사 직후 소론 준론이 사친추보를 주도하면서, 칭호를 정하고 사우를 세우는 추보 방식을 주장했다. 이에 반대하는 노론과 소론 완론은 숙종의 뜻을 따르는 계지술사를 강조했고, 계지술사의 기준으로 장희빈 상례가 소환되었다. 준론은 숙종이 세자의 의례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추보의 정당성을 강조한 반면, 노론과 완론은 숙종이 ‘희빈’을 ‘장씨’로 호칭하고 세자의 의례를 제한한 측면에 주목했다. 또한 추보와 추숭의 개념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준론은 사친의 칭호와 사우를 세우는 방식을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추보’로 명명한 반면, 노론과 소론 완론은 예에 맞지 않는 ‘추숭’으로 규정했다.
1722년 임인옥사 이후 추보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옥산부대빈’이라는 칭호로 고쳐 쓴 신주를 새로 건립한 대빈묘<SUB>大嬪廟</SUB>에 안치하고, 경종이 대빈묘에 친림하여 전배례를 행하는 것으로 추보가 마무리되었다. 신임옥사와 동시에 진행된 사친추보는 강한 정치성을 드러내지만, 장희빈의 의례적 위상에 대한 검토를 토대로 덕흥대원군·인빈 등의 전례를 참조하여 의례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의례는 영조대 궁원제로 계승되지 못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궁원제의 성격과 의미를 규명하기 위해서, 경종대 사친추보 의례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목차

요약
1. 머리말
2. 숙종대 장희빈 상례의 위상
3. 경종대 사친추보 논의의 성격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